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하영구의 마지막 도전

30년 뱅커 "KB 잠재력 끌어내고 은퇴하고 싶어"<br>과거에도 하마평, 번번이 침묵 "씨티銀 안정돼… 적절한 시기"<br>"이민가는 느낌… 고심 컸지만 금융계에 기여" 인생 건 승부


시중은행, 그것도 실적이 생명인 외국계 은행에서 다섯 번의 연임으로 14년째 국내 최장수 타이틀을 놓치지 않은 은행장. 30여년을 은행에서만 보낸 명실상부 '직업이 은행장'이라는 별칭이 있을 만큼 금융사 수장으로서 관록이 깊은 하영구(61·사진) 한국씨티은행장.

그가 지금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큰 도전에 나섰다. 현직 은행장으로 유일하게 KB금융지주회장 인선에 참여한 것이다.


하 행장은 인선 참여를 공식 발표하기까지 고심이 컸다. 8명의 쇼트리스트를 발표할 때도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기를 바랐고 결국 언론을 통해 이름이 거론될 때도 망설였다. 다른 조직의 수장으로 앉아 있는 것에 대한 부담, 그리고 조직원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결국 지난 6일 직원들에게 "향후 KB 지주 회장 추천을 위한 평판조회 등 프로세스를 진행함에 있어 본인 동의 요청을 받아 이를 수락했다"는 메시지를 보내 회장 인선 참여를 공식화했다. '비밀'이 오히려 조직원들을 혼란스럽게 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하 행장은 그 어느 때보다 혼란한 지금 이 시점에 KB금융지주의 회장 인선에 나선 것일까.

사실 하 행장이 KB금융의 수장으로 거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4년과 2007년에는 국민은행장에, 지난해는 임영록 전 회장과 더불어 KB금융지주회장에 거론된 바 있다. 2004년에는 내정 단계에 들어서기도 했다.

심지어 2008년에는 금융위원장 하마평에도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번번이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히거나 침묵으로 일관해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이번 그의 도전을 '인생을 건 승부수'라고 평가한다.

하 행장은 회장 인선에 나선 후 주변 사람들에게 "이민을 가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고심이 컸다는 얘기다. 당장 KB 회장이 되더라도 그의 연봉은 지금보다 4분의1로 수준으로 줄어든다.

무엇보다 KB의 회장 도전에 성공하지 않더라도 지금의 자리가 위태로워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가 이 순간 새 도전에 나선 이유는 어찌 보면 단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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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행장은 7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지금이 (도전에 나설) 적절한 시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과거에는 그가 조직을 떠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2004년과 2007년은 한미은행이 씨티은행에 막 통합된 어수선한 시기였다. 당시 내부에서는 통합 씨티은행의 초대 행장을 맡고 있던 하 행장에게 조직의 안정을 위해 국민은행장 도전을 만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 행장과 친분이 있는 한 금융계 고위관계자는 "이제는 30년 뱅커로서의 마침표를 어떻게 찍을 수 있을까 고민하는 시기가 왔다"며 "한국 금융이 국제적인 기준에 비해 뒤처져 있는 상황에서 국내 최대 규모인 KB금융이 분열되는 상황까지 목격하면서 지금까지 쌓아온 자신의 역량을 펼쳐 금융계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솔직히 이제 와 개인적으로 부를 쌓고 명예를 얻으려는 것은 하 행장에게 중요하지 않다"며 "고참급 은행장이자 지주회장으로서 역할을 하려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지인들에게도 "KB금융은 정말 잠재력이 대단한 조직이다. 그 힘을 그동안 쌓아온 뱅커로서의 노하우로 꺼내보고 싶다"는 소망을 피력했다.

이는 역으로 씨티은행장으로서의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그가 이끌어온 씨티은행의 실적은 계속 줄어들고 있다. 2011년 4,567억원이었던 당기순이익은 지난해 2,191억원으로 반토막 났다. 올 초 전체 지점의 30%에 이르는 56개 지점을 폐쇄하고 650명이 희망퇴직하면서 노조와의 파열음을 냈다.

금융과 정보기술(IT)의 융합, 이를 통해 이른바 '은행 없는 은행'의 시대에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하지만 고락을 같이했던 직원들을 떠나보내야 했던 그의 심정은 매우 괴로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의 도전은 너무 험난한 과정이다. 한 금융계 고위관계자는 "KB노조에서 외부 인사를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는데다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이끌었던 경력을 감안할 때 하 행장으로서는 힘든 도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하 행장이 설령 KB 회장직에 실패하더라도 '다른 자리'를 기약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당장 연말이면 이순우 우리금융지주 회장의 임기가 다가온다. 이 회장의 연임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지만 그래도 다른 선택지는 남아 있다. 바로 금융당국의 수장 자리다. 금융위원장이든 금융감독원장이든, 연말·연초로 금융당국 수장의 교체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탓이다.

설령 이 모든 선택 함수들이 모두 빗나간다고 해도 그의 30년 노하우를 원하는 곳은 많다. 한 금융계 고위관계자는 "씨티 측에서 하 행장에 대한 신임이 아직 강한 상황이어서 하 행장을 붙잡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기도 했다.

물론 하 행장의 답은 명쾌하다. 그는 자신의 거취 문제에 대해 "나에게 중요한 것은 씨티은행의 고객과 직원·이사회와 주주들"이라며 "거취와 같은 중요한 문제는 먼저 이사회와 주주들에 이야기를 한 후 밝히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한다. 이해해달라"는 말로 갈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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