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105> 진정한 싸움의 기술


사람들은 싸움이 힘겨루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누군가와 분쟁하게 될 경우 화를 내거나 자신의 감정을 스스럼없이 드러냄으로써 상대방을 제압하려고 합니다. 그렇지만 전국시대의 현인 손자(孫子)에 따르면 싸움은 남을 속이는 ‘위도’(危道)입니다. 단순히 거짓으로 상대방을 현혹시키기 보다 그가 원하는 바와 가치 체계 등을 이해하고, 행동의 저변을 파악함으로써 근본적인 대응을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가장 훌륭한 싸움은 상대방과 직접 실력 대결을 하지 않고 굴복시키거나 세력에 복속시키는 것입니다. 풍림화산(風林火山), ‘빠르기는 바람과 같고, 고요하기는 숲과 같으며, 타오르기는 불과 같고, 안정적으로는 산과 같아야 한다’는 가르침은 훗날 일본의 전국시대(戰國時代) 영웅들에게까지 깊은 영향을 미쳤다고도 합니다.


그 때문일까요. 좀처럼 무력 대결이 없는 오늘날 사람들 간의 싸움을 보면, ‘하수’들 간의 갈등인 것 같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감정절제를 하지 못해 누군가와 대결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본전을 고스란히 드러낸 채 진흙탕 속 싸움으로 끌려 들어 갑니다. 정치인들 간 설전이 대표적입니다. 겉보기에는 법안이나 정책과 관련된 이견인 것 같지만, 좀 더 깊이 들어가면 자신이 누군가와 맞붙었을 때 이겨야만 한다는 감정이 드러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취약한 대응들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갈등이 가장 가속화되는 시기는 진영논리가 대두할 때입니다. 흑과 백, 좌와 우의 논리로 나뉘어 싸우면서 사안의 미묘함과 다양성을 이해하지 못한 발언을 할 때, 그 정치인은 ‘리더’가 아니라 ‘싸움꾼’이 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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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서도 그런 것 같습니다.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놓고 부하에게 무엇인가 생산적인 비판을 들으면 힘으로 찍어 누르려는 상사, 원칙과 규범에는 큰 관심이 없으면서 자기 지분을 침해당하면 싸우려 드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그런 갈등이 일어나는 것을 ‘사내정치’라고 하고 있으니,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정치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신념과 가치를 바탕으로 상대방을 설득시키는 매우 고차원적인 작업입니다. 자기가 손에 쥔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감정과 이성을 분간하지 못한 채 처신하는 것은 ‘발악’이지 진정한 경쟁과 갈등의 전략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새누리당의 유승민 원내대표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업적에 대해 재평가하는 발언을 해 화제가 되었습니다. KDI 연구위원 시절 민주당 정부의 경제 정책에 이견을 품은 것으로 인해 찬밥을 먹게 되었고, 결국 비정년 교수직을 전전하며 ‘서러운 나날’을 보낸 것으로 알려진 유 원내대표입니다. 그리고 이회창 전 총재와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 브레인으로 활약하기도 했었죠. 그런 그가 상대방 집단의 정신적, 정치적 수뇌가 지니는 역사적 가치를 인정하기란 쉽지 않았을 겁니다. 물론 유 원내대표의 깜짝 발언으로 인해 보수진영 내부에서도 파란이 일었습니다. 자기 성격 대로 ‘똑똑한 소리’를 해 버렸다고 말이죠. 그러나 손자의 관점에서 보면 유 원내대표의 발언은 재평가할만한 부분이 많습니다. 싸움은 단순한 힘겨루기가 아니라 정치입니다. 그리고 때로는 상대방이 ‘아’(我)와 ‘피아(彼我)’를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형세를 다양하게 취하는 게 ‘위도’로서의 싸움의 기본입니다. 경영학과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한 기자의 입장에서 유 원내대표의 처신이 새로운 묘수가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iluvny23@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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