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원천기술이 힘이다

황우석 교수팀의 줄기세포 공방으로 온 국민이 패닉 상태에 빠진 듯한 모습을 보며 얼마 전 미국에서 업무 관계로 만났던 일본계 벤처투자가의 말이 생각났다. “기술은 참으로 아름다운 것입니다. 기술은 국가나 종교, 그리고 인종을 초월해서 중요합니다. 원천기술만 보유하고 있다면 저는 10년이고 20년이고 기다리는 투자를 합니다. 언젠가는 성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 기술이건 일본 기술이건 그건 문제가 안됩니다. 훌륭한 기술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 줄 아십니까?” 핵심기술 확보 전쟁 치열 한일간의 외교 마찰이 있는 와중에 꽤나 잘난 척한다고 생각했지만 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하려는 그의 진지함을 충분히 읽을 수 있었다. 줄기세포 진위 여부에 대한 공방 와중에도 온 국민이 바라는 것은 원천기술의 보유만이라도 진실이었으면 하는 것이다. 황 교수팀이 원천기술만 갖고 있으면 시일이 좀 걸리더라도 언젠가는 논란이 되고 있는 모든 사실들을 입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술이란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21세기 들어 각국이 치열하게 벌이고 있는 기술 확보 전쟁은 ‘원천기술이 곧 힘’이라는 논리를 대변하고 있다. 우리가 그토록 줄이고 싶어하는 대일 무역수지 적자도 결국은 부품소재 핵심기술의 격차에서 비롯된다. 대일 무역수지 적자를 줄이기 위한 갖은 노력이 효과가 없는 것은 핵심기술의 격차가 좁혀지지 않기 때문이다. 기술을 개발하고 혁신하기 위해 들이는 각국의 노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우리 정부도 여기에 어느 나라 못지않게 많은 힘을 쏟아붓고 있다. 신성장산업의 기술 개발과 혁신을 돕기 위한 다양한 정책은 그 성과도 대단하다. 정보기술(IT)산업 등 몇몇 분야에서 우리나라는 이미 세계적 기술 선도력을 보유할 만큼 높은 위상을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몇 가지 전제가 있다. 우선 기술 혁신을 유도하기 위한 자금의 공급이 당초의 취지보다는 단순히 경제적 약자를 도와주는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창업기업이나 중소기업, 또는 여성기업이나 지방기업의 범주에 들어야 수혜 대상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기술 혁신은 기업의 규모나 업력, 또는 지역이나 성별의 순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기술 혁신을 가장 속도감 있게 할 수 있는 기업에 자금의 공급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기술 인큐베이션을 수행하고 시너지 효과를 추구할 수 있는 기업에 우선적인 배분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그러자면 부품소재 등을 중심으로 산업별 전문 펀드의 조성이 필요하고 그 운용도 단순히 약자를 배려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야 한다. 약자를 배려하는 정책과 기술 혁신을 유도하는 정책이 혼용돼서는 효율을 기대하기 어렵다. 둘째는 기술의 가치평가에 대한 인식이다. 시장에는 기술의 가치평가(valuation)와 가격결정(pricing)이라는 두개의 다른 개념이 존재한다. 그런데 정부는 지나치게 가치평가의 문제만 붙들고 있는 느낌을 준다. 약자에 대한 배려 차원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는 기술을 가진 사람들을 착각에 빠지게 할 수 있다. 기술에 공정가격이 있다거나 정부가 가격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심어줄 수 있는 것이다. 정부지원 약자 배려차원 벗어나야 가치평가는 가격결정에 있어서 하나의 참고 사항일 뿐 이다. 가격결정은 협상(negotiation)과 법률적 과정(legal process)을 거쳐 이뤄진다. 기술의 가격은 협상과 법률적 과정에서 이뤄지는 생물이다.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이를 정확히 알도록 해야 하며 이를 도와줄 전문 시장이나 인력의 양성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그래야 보다 다양하고 경쟁력 있는 원천기술들이 많이 개발될 수 있지 않을까. 경제 환경이 변하고 그 수준이 옛날 같지 않으니 정책의 마련도 그 차원을 달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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