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항공무선표지소, "가족에 늘 미안… 항공기 무사고 운항에 보람"

■ 추석 연휴가 더 바쁜 사람들

● 소방서 구조대원

사고 많아 24시간 긴장해야… "고맙단 말에 고단함 사라져"

● 차례음식 대행업

맞벌이 부부 늘면서 수요 급증… "수백건씩 주문 몰려 정신 없죠"

추석에도 비상근무해요, 추석 연휴를 이틀 앞둔 지난 4일 한국공항공사 안양 항공무선표지소의 고동준(왼쪽) 소장과 김수권 차장이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항공무선표지소에서 전방향표지시설(VOR)·전술항행표지시설(TACAN) 등 장비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제공=한국공항공사

"올해는 추석 전날에 야간 근무 당첨이네요." 김수권(58) 한국공항공사 안양 항공무선표지소 차장은 추석 명절을 앞두고 오랜만에 찾아온 외부손님을 반갑게 맞으며 이렇게 말했다. 대체휴무제 도입으로 올 추석은 5일 연휴를 맞게 됐지만 김 차장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항공무선표지소는 전방향표지시설(VOR)·전술항행표지시설(TACAN) 등 장비를 통해 운행 중인 항공기에 방위와 거리정보를 제공해주는 시설이다. 선박으로 치면 등대 역할을 하는 셈이다. 전국에 10개소가 있는데 장비 속성상 산꼭대기에 있다. 안양 항공무선표지소 역시 비봉산 꼭대기에 자리 잡고 있다.

항공기 운항이 1년 내내 이어지는 만큼 항공무선표지소도 365일 24시간 근무체제다. 주간·야간·비번 방식으로 3명이 순환근무를 하고 있다. 김 차장은 올해로 19년 차 베테랑. 전북 남원이 고향이지만 명절 때 고향을 가본 적이 없다. 김 차장은 "명절에 고향에 내려가서 부모님에게 인사도 하고 살아야 하는데 가족들에게 늘 미안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함께 근무하는 고동준(58) 소장도 같은 심정이다. 고 소장은 "365일 근무체계이다 보니 명절을 챙길 수가 없다"며 "큰딸이 일곱살 때 가족을 두고 무선표지소 근무를 시작했는데 아내와 딸에게 늘 빚을 진 기분"이라고 말했다.


세 명이 빡빡한 스케줄 근무를 하는 만큼 건강 관리에 유의해야 하는 것이 불문율이다. 김 차장은 "내가 아파서 근무를 할 수 없게 되면 다른 근무자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며 "술은 아예 마시지 않고 밥도 직접 해서 먹고 건강 유지에 항상 신경을 쓴다"고 말했다.

야간에 홀로 근무할 때는 고독을 이겨내야 한다. 김 차장은 "가장 힘든 점은 야간에 홀로 근무하는 것"이라며 "문득문득 가족들이 떠오를 때가 있다"고 말했다.

남들이 알아주지는 않아도 보람은 크다. 관악산을 지나는 항공기를 볼 때마다 미소가 나온다. 김 차장은 "악천후에도 항공기들이 사고 없이 운행하는 걸 보면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고 소장 역시 "우리나라는 산악지형인 데다 항로가 혼잡해 늘 긴장해야 한다"며 "항공기들의 지킴이 역할을 한다는 점이 뿌듯하다"고 말했다.

소방서 구조대원 역시 명절에 더 바쁘다. "아들아. 이번에는 내려오나." 서울 도봉소방서의 구조대원인 조운용(44)씨 노모는 명절이 되기 전에 항상 아들에게 먼저 전화를 건다. 고향인 안동에 와서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는지를 묻는 것은 연례행사가 돼버렸다. 구조대원 생활 11년째, '이번에는 갈 수 있다'고 항상 그는 말한다. 하지만 명절 때 그가 있는 곳은 늘 구조현장이었다.


조씨만 그런 것은 아니다. 많은 이들이 명절의 즐거움을 만끽할 때 전국의 대다수 소방관들은 일선 현장을 지킨다. 오히려 평소보다 더 긴장의 끈을 조여야 할 시기가 명절이다.

관련기사



소방방재청에 따르면 실제로 지난해 추석 연휴 사흘간 하루평균 구조·구급 상황은 1만389건, 구조와 구급이 각각 2,819건과 7,570건이었다. 이는 지난해 전체 평균인 구조 1,096건, 구급 4,121건에 비교해 2배에 육박하는 수치다.

특히 지난 3년간 명절 연휴에 하루평균 구급 출동은 6,522건으로 평상시(3,021건)의 2배를 웃돌았다. 일선 소방대원들은 명절을 맞아 기분이 들뜬 나머지 안전사고 발생이 잦다고 전했다.

그뿐 아니다. 많은 이들이 명절날 환한 달빛 아래서 누군가와 함께 미소를 짓지만 그 뒤쪽 언저리에는 적막함이 드리우는 곳이 항상 있다. 혼자인 자신을 비춰보며 신세를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포기하는 이들도 명절에 많다. "가족들과 함께 못 한다는 점보다 이럴 때 마음이 더 무겁다"고 조씨는 말했다.

하지만 자부심도 크다. 도봉소방서 응급대원인 이민정(34)씨는 "많은 사람들이 연휴 기간에 위급할 때 도움 받을 곳이 없다고 당황해 한다"며 "사람들이 고맙다고 말해줄 때 명절 근무의 고단함이 눈 녹듯 사라진다"고 말했다.

차례를 대행하는 사람들도 바쁜 업무로 정작 자신들은 가족과 명절을 함께하기 어렵다. 서울 봉은사는 이번 추석날 오전8시(1부)와 10시(2부)에 각각 차례를 대신 지낼 예정이다. 봉은사 관계자는 "집에서 음식을 차리지 않고 절에서 차례를 지낸 뒤 바로 산소로 가는 가족도 많아졌다"면서 "매년 꾸준히 신청하는 분들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밝혔다.

차례상 마련 대행은 증가 추세이다. 잘나가는 곳은 수백 건의 주문이 몰릴 정도여서 차례음식대행 업체들은 추석 대목을 맞아 눈코 뜰새 없이 바쁜 모습이다. 명절 음식 준비가 쉽지 않은 맞벌이 부부 증가와 실속 있게 음식을 준비하려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꾸준히 수요가 늘었다. 업체별로 10만원에서 50만원대까지 종류가 다양하고 지역과 가족 수에 따라 선택의 폭이 넓다.

서울에 사는 A씨는 지난 제사 때 처음으로 차례음식대행 주문을 한 후 이번 명절에는 망설임 없이 다시 이용하기로 마음 먹었다. A씨는 "집에서 힘들게 준비한 것과 가격과 맛 모두 별 차이가 없고 오히려 편해 자주 이용하려고 한다"며 "음식이 남아 고민하던 문제가 싹 해결됐다"고 말했다.

대개 5년 이상 영업을 해온 업체들은 이미 상당수의 단골을 확보했을 정도다. 이연아 홍동백서 대표는 "이번 추석은 예년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데 주로 기존 소비자들이 계속해서 찾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김한순 원조늘봄상차림대행 대표도 "몇몇 품목 물가가 추석을 앞두고 뛰어도 몇 년째 관계를 맺고 있는 단골들을 위해 가격을 올리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