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로드맵만 있고 실행없는 NARO 공화국… 제도개선이 경쟁력이다

■ 광복 70년 다시 뛰는 대한민국

1부. 위기극복 DNA를 살리자 <3> 시스템 개혁이 성장 인프라

단기처방·생색내기식 처리가 국가 경쟁력 발목

시스템만 선진화해도 성장률 절반 가까이 올라



대우조선해양의 분식회계 논란을 보면 지난해 말 발생한 희대의 수출금융 사기인 모뉴엘 사건과 닮아 있다. 채권단은 기업의 회계 부정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 이면에는 조직의 환부를 곪아 터지게 만든 허술한 시스템이 있었다.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대주주인 산업은행의 느슨한 관리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 △국책은행 우산 아래 안주를 바란 노조 등이 얽히고설켜 실타래를 더 꼬이게 했고 모뉴엘은 △은행의 여신심사 부실 △무역보험공사의 허술한 보증서 발급 등이 빚어낸 참극이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런 사태가 발생한 후다. 시간이 걸리고 지속적 관리가 필요한 본질적 처방을 강구하기보다는 일벌백계식 처벌과 단편적 해법 마련에 무게를 두는 경향이 강하다. 당장 산업은행은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증자에 나서고 있고 모뉴엘의 경우 은행과 무보의 법적 공방에 시스템 정비는 뒷전이 되고 수출금융도 바짝 얼어붙었다. 그 결과 시스템의 누수는 누수대로 방치되고 조직에는 보신주의만 팽배하기 쉽다. 땜질식 처방이 주가 되다 보니 문제해결 과정에서 생기는 노하우 축적도 어렵다. 당연히 조직의 기회비용이 커질 수밖에 없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두 사건 모두 문제의 핵심은 공익이라는 이유로 둔 대리인이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근본적 해결책에 대한 논의 없이는 앞으로 유사한 사고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한 전직 고위관료는 "우리 사회가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여론 무마에 급급해 문제를 뒤엎어버리는 식의 일 처리에서 벗어나 프로세스의 약점을 끊임없이 보완하려는 정치한 노력을 더 기울여야 한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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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색 공화국, 로드맵만 있고 실행은 없다=지난해 4월 세월호 침몰사고 이후 안전에 대한 전사회적인 경각심과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반년 만에 성남 판교에서 공연장 붕괴사고가 또 터졌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쉽게 끓고 쉽게 망각하는지, 그리고 말만 무성하고 실천은 떨어지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건이라 해도 무리가 아니다.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은 "과거 1998년 외환위기 당시 컨설팅 업체 부즈앨런&해밀턴은 우리 경제의 위기 원인을 'NATO(No Action, Talk Only)'라고 지적했는데 아직도 달라진 게 별로 없다"며 "지금은 정책 리포트가 쏟아지지만 실제 하는 것은 없는 'NARO(No Action, Report Only)' 상태"라고 꼬집었다.

생색내기에만 치중하기는 관료와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최근 정부가 사실상 종식을 선언한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만 봐도 그렇다. 개각 등에는 촉각을 곤두세우면서도 정작 가장 중요한 사태 전모를 다룬 백서나 체크리스트 작성 등 사태해결 프로세스 정비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떨어진다. 전문성을 갖춘 인물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도 태부족이다. 최근 보건복지부는 언제나 그랬듯이 행정고시 출신 인사 2명을 질병관리본부 핵심 국장에 앉혔다. 한 고위관료는 "정책을 처음 내놓을 때 세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때문에 공무원들도 발표에만 관심을 쏟는 경우가 많다"며 "하지만 정책발표와 실제 집행 간에는 적게는 6개월, 길게는 1~2년의 시차가 발생하는데 정작 가장 중요한 관리에 소홀하다 보니 정책이 시장에 안착하기 어렵다"고 털어놓았다.

◇프로세스 등 시스템 정비해야 경쟁력 제고=세계경제포럼(WEF)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144개국 중 우리나라 국가경쟁력은 26위로 1년 전보다 1계단, 지난 2012년 대비해서는 7계단이나 하락했다. 국가경쟁력이 뒷걸음질치는 것은 결국 시스템 문제에서 기인한다. 실제로 한 나라의 시스템 전반을 평가하는 '제도' 부문이 전체 82위로 전년 대비 8계단 하락하며 가장 큰 낙폭을 기록했다. WEF는 "역사적으로 순위가 저조한 제도 부문의 개선 없이는 한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평가했다. 과거 수출을 바탕으로 압축적 성장을 해왔지만 이제는 성장 인프라를 보강하는 등 체질을 바꿔야만 한다는 의미다. 황인학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자본 투자나 노동 투입보다 시스템 지표인 제도가 경제성장률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다"면서 "우리나라의 제도경쟁력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으로 끌어올리면 다른 조건이 일정하더라도 연간 경제성장률은 현재보다 45%가량 올라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조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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