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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만 페이지 분량 기록 검토서 재배당·미제사건까지 수두룩… 주말 반납한 채 밤샘근무 일쑤
다른 수사팀 차출 최소화하고 전담분야 지정 전문성 키워야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형사부에 근무하는 A검사는 오전 7시 출근하자마자 경찰에서 넘어온 '사건 기록'을 검토하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한다. 분량만 2만3,0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양이다. 일과시간 틈틈이 짬을 내고 매일 밤 자정을 넘겨서까지 서류를 훑어보지만 분량 자체가 많고 사건 내용도 복잡해 벌써 일주일 가까이 기록과 씨름을 하고 있다. A검사는 "일과시간에는 주로 피의자나 관계자 조사가 계속 이어져 기록을 볼 시간이 거의 없다"며 "여러 사건이 밀려드는 상황이라 사건마다 기록검토와 조사가 반복되다 보니 평일은 물론이고 주말에도 야근을 하는 것이 거의 일상이 됐다"고 털어놨다.
형사부 검사들은 대부분 A검사와 비슷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들은 형사부의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시간 부족을 꼽는다. 기록검토와 조사 이외에도 각종 검찰청 업무에 경찰 수사지휘까지 몰리면 일주일 대부분의 시간을 쏟아부어도 부족하다는 얘기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의 형사부 검사 1명이 1년에 처리하는 사건은 1,600건에 이른다. 휴일을 따지지 않더라도 하루에 4.4건, 토요일과 일요일을 제외할 경우 6.2건이나 사건을 처리하는 셈이다. A검사는 "비유하자면 인지 수사부서는 짧은 기간에 강도 높게 일하고 쉬는 '프로젝트' 성격이라면 형사부는 높은 강도의 일이 매일 이어진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일을 대충 할 수는 없다. A검사는 "검사에게는 여러 사건 가운데 하나지만 당사자로서는 (검찰 수사는) 일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라며 "이런 생각이 떠오르면 지치다가도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게 된다"고 말했다.
갑자기 업무가 겹치는 점도 형사부 검사의 고충 가운데 하나다. 서울중앙지검 형사부의 B검사는 "불구속된 피의자를 소환조사 하고 있는데 갑자기 구속사건이 배당되는 경우가 있다"며 "구속사건 수사는 일선 검사실에서 일정을 조정할 수 없는 터라 이럴 땐 어쩔 수 없이 업무 일정에 차질이 생긴다"고 말했다. 이어 "여기에 도망갔던 지명수배자가 갑자기 붙잡혀오기라도 하면 업무가 이중삼중으로 늘어난다"고 말했다.
시간 부족 외에도 어려움은 또 있다. 바로 수사 결과에 대한 당사자의 불복이다. 시간에 쫓겨가며 사건을 처리했지만 검찰 처분에 승복하지 않은 당사자들이 민원이나 진정을 제기하는 경우가 다반사인 데다 항고에 재항고, 재정신청 등 처분 불복절차를 밟는 사례가 과거보다 많아졌기 때문이다.
형사부에 근무한 경험이 있는 C부장검사는 "고소·고발건은 양 당사자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할 수밖에 없다"며 "당사자들이 곧바로 수사 공정성을 의심해오는 경우가 많은 이유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검찰의 기본 책무인 수사와 결정에 대해 당사자들이 불복하는 것은 겸허히 받아들이고 개선의 필요가 있다면 고치는 것이 분명히 맞다"면서도 "검찰 처분이야 어쨌든 '나는 내 갈 길 가겠다'며 버티는 막무가내식 불복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전했다.
형사 고소·고발을 민사 소송의 대체수단으로 활용해 남발하는 예도 적지 않다. C부장검사는 "채무를 받아내기 위해 고소·고발을 압박 수단으로 악용하는 당사자도 있다"며 "민사 소송의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고소·고발을 넣고 보자는 변호사도 있다"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검찰도 정기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해 문제점을 파악하고 업무 합리화를 위한 기획단을 꾸리는 등 자체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일선 형사부 검사들은 '변화를 피부로 느끼기는 부족하다'는 반응이다.
서울중앙지검의 또 다른 형사부 소속 D검사는 "장기 미제사건이나 이른바 깡치사건을 많이 처리해 한숨 돌리는가 싶었는데 같은 부 소속 검사가 다른 수사팀으로 차출돼 서너건의 사건을 갑자기 떠맡은 적도 있다"며 "작년에 이러한 재배당이 4~5차례나 있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복잡한 사건이 검사 1명에게 몰리면 수사의 효율성이나 질을 떨어뜨려 당사자의 불신과 불복으로 이어질 수 있다. D검사는 "형사부 검사의 차출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며 "가뜩이나 지금은 처리하는 사건과 업무량에 비해 수사관과 실무관의 수가 현저히 부족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형사부 검사들은 궁극적으로 열악한 업무 환경에다 특수부나 공안부 같은 인지 수사부서를 선호하는 검찰 내부 분위기가 겹치며 생기는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형사부 보직은 누구나 맡을 수 있는 것'이란 인식은 누구보다 민생범죄 척결의 일선에 서야 할 형사부 검사의 힘을 빠지게 만들 수 있다. 이는 결국 검찰의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는 위험요소이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검 형사부의 E검사는 "경력 검사들에게 특정 전담분야를 줘서 전문성을 키우는 방법도 형사부 검사들의 사기를 북돋울 수 있는 하나의 요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