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서직으로 일하는 스테파니 매클로스키(26)씨는 최근 타운하우스 매입을 위해 은행에 모기지 대출을 신청했지만 퇴짜를 맞았다. 은행이 3만달러의 학자금 대출과 월 소득을 감안하면 매달 500달러의 대출 이자를 갚을 능력이 안 된다고 본 것이다. 매클로스키씨는 "대학 졸업 뒤 2년 만에 내 집을 마련할 계획이었는데 학자금 대출이 내 인생의 약점을 잡고 있는 느낌"이라고 하소연했다. 한 방송국의 광고영업 사원인 레이철 헤프너(29)씨는 아예 집 사기를 포기했다. 연봉은 4만6,500달러인데 6만달러에 이르는 학자금 대출을 상환하기 위해 매달 691달러를 지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헤프너씨는 현재 남자 친구와 함께 부모 집 지하실에서 동거 중이다.
이처럼 학자금 대출에 짓눌려 인생의 꿈을 잃어가는 미국의 청춘들이 늘고 있다. 이들이 주택구입 등 소비를 줄이면서 가뜩이나 회복세가 취약한 미 경제에도 부담을 주고 있다. 특히 조만간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본격화되면서 경제활동인구가 줄어드는 가운데 젊은 세대들의 구매력이 추락하며 미국이 장기적으로 저성장·저물가의 '뉴 노멀(New Normal)' 국면에 접어들 것이라는 경고도 속출하고 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청년들이 역동성을 잃으면 사회 전반의 활력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미 위스콘신대의 한 여대생이 학비 마련을 위해 아마추어 포르노 영화에 출연했다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 쏟아진 조롱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해 미 전역이 떠들썩한 바 있다.
중도 성향의 싱크탱크인 뉴아메리카재단이 지난달 낸 보고서에 따르면 미 대졸자의 71%가 졸업과 함께 평균 2만9,400만달러의 대출금을 떠안고 사회에 나온다. 25~34세 평균 연봉인 3만7,523달러에 육박한다. 총 학자금 대출규모는 올해 1·4분기 현재 1조2,000억달러로 2004년 1·4분기 4,000억달러에 비해 3배나 늘었다. 석 달 이상 연체율도 지난해 4·4분기 11.5%를 기록했다.
모기지 대출 부담까지 더하면 사정은 더 심각하다. 웰스파고가 22~33세 1,600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47%가 월 소득의 절반 이상을 빚 갚는 데 지출했다고 답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학자금 대출이 2008년 금융위기를 촉발한 제2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를 불러올 것이라는 우려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달 9일 학자금 대출의 상환 한도를 월 소득의 10%로 제한하는 행정명령을 발동했지만 빚 갚는 시기를 뒤로 연기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학자금 대출은 파산을 통해 청산할 수도 없고 다른 대출처럼 압류의 대상도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더구나 젊은 세대가 경기둔화의 직격탄을 가장 먼저 맞으면서 사태는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쓸 만한 일자리가 줄어들자 생계 해결을 위해 대학에 등록한 뒤 저금리인 학자금 대출을 받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이다. 플로리다에서 가게 점원으로 일하다 실직한 레이 샐런트(30)씨는 집 근처의 카운티대에 등록한 뒤 학자금 대출을 받아 집세와 휴대폰 요금을 냈다. 그는 "나중에는 미래가 더 암울해진다는 사실을 알지만 학자금 대출을 받는 게 살아남을 유일한 방법이었다"며 한숨을 쉬었다.
실제 미 교육부에 따르면 학자금 대출 가운데 집세·교통비·잡비 등의 비중이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또 수강 신청을 하지 않은 4만2,000명 이상의 학생에게도 평균 5,285달러의 학자금이 지급됐다.
미국과 대학교육 제도가 비슷한 영국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영국의 민간 연구단체인 재정연구소(IFS)와 워릭대 연구진이 4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학자금을 대출 받은 이들 중 73%는 50대까지 대출금을 갚아야 한다. 또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상환 연한인 30년이 지나도 대출금을 다 갚지 못해 탕감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됐다.
영국 대학생의 평균 학자금 대출액은 4만4,000파운드(약 7,612만원)로 미국보다 더 많다. 3%의 대출 이자가 추가되는데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총 원리금은 6만6,897파운드(약1억1,700만원)로 추산된다. 보고서는 "졸업 후 평균 임금 수준의 직장을 얻었다고 가정하면 40세에 아직 남아 있는 대출금이 3만9,000파운드, 50세에도 3만2,000파운드에 이를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많은 돈을 들여 졸업장을 받아도 예전처럼 고소득의 좋은 일자리를 보장 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영국 통계청에 따르면 대학 졸업장이 필요 없는 단순 일자리에 취직한 대졸자들의 비율이 금융위기 이전 39%에서 지난해 47%로 치솟았다. 대졸자일수록 실업률은 낮지만 이는 통계상 착시일 뿐 청년들의 실제 구직난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필립 브라운 영국 카디프대 석좌교수는 "부모 세대와 달리 대졸자는 흔하고 양질의 일자리는 귀해진 요즘은 청년들이 학비 대출 부담과 높은 실업률의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청년들이 직면한 혹독한 현실은 나라 경제 전체에도 부담을 주고 있다. 학자금 부담도 큰데 모기지 대출까지 받으면 구매력 저하로 소비와 기업투자 위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에서 35세 이하의 주택 보유 비중은 36.2%로 10년 만에 7%포인트 이상 추락하며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윌버트 반 데어 클라우 뉴욕연방준비은행 부총재는 "빚에 눌린 젊은이들이 부모와 함께 살면서 집이나 자동차를 사는 데 돈을 쓰지 않고 있다"며 "연체율이 늘어나는 학자금 대출 문제는 앞으로 10여년 동안 집요하게 미국 경제를 괴롭힐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청년들의 학자금 부담은 재정건전성 악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영국 정부는 지난해까지 학자금 대출 460억파운드 가운데 35~40%가 상환되지 못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정부의 재정 투입이 불가피하다는 뜻이다. 또 고령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는 가운데 청년들이 빚에 쪼들리면 복지비용을 감당할 세대가 사라진다는 것도 장기 우려 요인이다.
로힛 초프라 미 금융소비자보호국(CFPB) 학자금 대출 행정감찰관은 "학자금 대출 문제를 이대로 방치하면 글로벌 금융위기처럼 엄청난 후폭풍이 닥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