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뉴욕 사교계도 홀려버린 러시아 '본드걸'

미모의 스파이 채프먼, 정부관료 유혹해 기밀 캐내<br>푸틴 총리는 美 비난하면서도 양국관계 훼손 우려


"자연스럽게 행동하라." 비밀요원들을 미국으로 보내면서 러시아 대외첩보부(SVR)는 이렇게 강조했다. 미국인, 캐나다인으로 위장한 남녀 비밀요원들은 SVR의 지령에 따라 많게는 10년 이상 평범한 이웃들로 생활했다. 이들의 암약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이웃들은 "간첩일 리가 없다"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007 영화를 방불케 하는 이들의 활동과 면면이 알려지자 세간의 관심은 커지고 있다. 미국 정부가 기소한 스파이 11명 중 뉴욕 부동산 사업가 안나 채프먼(사진ㆍ28)이 특히 두드러진 관심을 받고 있다. 29일 워싱턴포스트(WP), 뉴욕타임스(NYT) 등 주요 언론에 따르면 붉은 머리에 푸른 눈동자를 지닌 그는 전형적인 '뉴요커'로서의 삶을 만끽했다. 고가의 옷으로 치장하며 파티를 즐겼다. 상류층만 드나드는 레스토랑과 고급 클럽을 드나들며 사교계에서 이름을 날렸다. SVR이 유력 인사들과 친분관계를 돈독히 하라는 명령에 뉴욕은 최적의 장소였고, 매력적인 채프먼은 최고의 적임자였다. 유투브 오른 동영상에서 그는 "뉴욕이 모스크바보다 인간 관계를 형성하기 쉽다"고 털어놓았다. 이날 ABC뉴스는 채프먼을 뉴욕의 중심지인 소호거리의 이름을 빌려 '소호 스파이'라 이름 지었다. 채프먼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려 놓은 매혹적인 사진들은 급속히 인터넷을 통해 확산됐고, 이를 본 인터넷 이용자들과 언론들은 채프먼을 '팜므 파탈', '본드 걸'로 부를 정도로 이목을 끌고 있다. WP는 그러나 "채프먼의 매력적인 모습은 치명적이었다"며 "정부관료들과 사업가들은 이에 유혹돼 국가기밀을 제공했다"고 전했다. 정보유출 혐의를 받는 채프먼은 '고작' 징역 5년이 최고형이지만 정보제공자들은 반역죄가 적용돼 최고 사형까지 선고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치명적 유혹의 결과 또한 참담하다. 채프먼을 비롯, 기소된 러시아 정보요원 중에는 언론인을 포함해 하버드대와 매사추세츠공대(MIT) 인근의 컨설턴트, 5개 국어에 능통한 러시아 여행사 직원 등이 포함됐다. 채프먼의 경우 미 백악관 등의 자문위원 역할을 했던 경제학자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의 페이스북 친구로 밝혀졌듯, 비밀요원들은 미국 사회의 지식인, 기업인, 고급 기술인력 등과 접촉하기 쉬운 직업으로 위장했다. 이날 AP는 "러시아가 미국의 무기 등 민감한 정보뿐 아니라 금융, 산업, 기술 등 다방면에 걸쳐 정보를 수집해왔다"고 밝혔다. 그러나 1970년대 미국에서 활동했던 러시아 스파이 출신 올레그 칼루긴은 CNN에 "공개된 정보를 얻으려 그렇게 많은 비밀요원을 침투시켰다는 것은 러시아의 정보력이 얼마나 쇄락했는지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냉전 이후 최대의 스파이 사건으로 평가 받는 이번 사건에 대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는 29일 미국을 비난하면서도 양국 관계가 손상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모스크바 외곽 관저에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을 만난 푸틴 총리는 "통제가 안 된 미국 경찰이 사람들을 감방에 처넣었다"면서도 "이번 사건으로 수년간 만들어 온 긍정적 양국관계가 훼손되지 않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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