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근을 공급하는 제강사들은 지난해 9월부터 납품업체로부터 철근값을 못 받고 있다. 벌써 5개월째다. 군소 제강사들은 줄줄이 문을 닫고 있고 근근이 연명하고 있는 곳도 빚더미에 올라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
이 모든 것이 건설사들이 공사에 사용하는 철근을 가져다 쓰면서 대금지급을 막무가내로 미뤄 벌어진 일들이다. 이렇게 못 받은 돈이 현대제철만 해도 약 500억원에 이르고 중간 유통회사를 통한 거래까지 더하면 전체 미수금은 1,000억원을 넘어간다.
철근을 공급하는 제강사와 건설업체 사이에는 '비정상적 거래 관행'이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건설경기가 급격히 위축되자 건설사들은 지난 2010년 말부터 일단 나중에 가격을 책정하고 먼저 물건부터 받아가겠다고 떼를 쓰기 시작했다. 제강사들은 말도 안 된다며 납품을 거부했지만 철근 공급 중단으로 건설현장이 멈춰 서자 정부가 건설사들의 손을 일방적으로 들어줬다.
경제 전반이 위축될 수 있다며 찍어누르는 정부의 압박에 제강사는 울며 겨자 먹기로 한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이때부터 건설사들은 물건은 먼저 받아가고 나중에 대금을 지급하는 '선(先)출하 후(後)정산'이라는 아주 이상한 거래방식이 굳어져버리고 말았다.
결국 철근시장 점유율 1위인 현대제철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12일부터 가격책정이 안 되면 물건을 지급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제강사들은 일제히 환영하고 나섰다. 가뜩이나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갑(甲)의 위치에 선 단골 건설사들의 심기를 다치게 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던 차에 업계 1위인 현대제철이 나서줬으니 군소 제강사들은 반길 만도 하다.
반면 건설사들은 현대제철의 강경한 조치에 크게 당황하며 "가격협상을 유리하게 끌고가기 위한 횡포"라고 비난하고 있다. 더욱이 최악의 경우 제강사와 건설사의 갈등이 커지면 '납품 중단→공사 중단' 사태가 재연될 가능성도 있어 현대제철의 조치가 과연 최선이었는지는 따져봐야 한다.
철근값을 둘러싼 공방은 쌍방 모두에게 이해할 만한 사정과 논리가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물건이 건너가면 돈이 지불돼야 한다는 거래의 상식은 반드시 존중돼야 한다. 또한 건설사들의 실력행사 속에서 고통을 겪고 있는 군소 철강사들이 겪는 약자의 설움도 깊이 살펴야 한다. 이 모든 문제를 대화와 협상으로 풀어내는 지혜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