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위기 반드시 온다는 자세로
국가적 차원 체계적인 대응 필요 우리는 위기 사전예측 모델 없어
농진청서 태스크포스 만들어 연구 곡물가격 급등 향후 더 심화될 것
전략적 해외식량기지 다변화해야 "이제는 글로벌 식량위기에 대비하기 위한 매니지먼트(관리)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합니다. 식량위기가 반드시 온다는 자세로 사전대책뿐 아니라 사후대책까지 위기관리 대응 시스템을 준비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졌습니다." 지난 18일 수원 농촌진흥청 집무실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가진 민승규(사진) 농촌진흥청장은 "식량은 경제는 물론 사회ㆍ정치적으로도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에 식량주권 확보를 위해 국가적 차원에서 관심을 갖고 체계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면서 곡물파동으로 인한 식량전쟁에 우리도 시급히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에게는 안타깝게도 사전예측을 통해 위기관리를 하는 세계 식량수급 모델이 없다"며 "농진청에서 식량위기 대응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사전에 식량위기를 막는 대비책을 만드는 것에서 식량위기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피해를 최소화시킬 수 있을지 등 두 가지 측면 모두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민 청장은 이날 약 2시간 가까이 진행된 인터뷰를 통해 글로벌 식량파동의 원인에서부터 우리의 대응책까지 조목조목 짚었다. 2009년 기준 우리나라의 곡물자급률(사료용 포함)은 26.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1개국 중 29위로 최하위권이다. 품목별로 보면 쌀은 98.0%이지만 콩(8.4%), 옥수수(1.0%), 밀(0.5%) 등은 심각한 수준이다. 또한 사료용을 제외한 식량자급률은 51.4%(2009년 기준)이고 국민 1인 1일당 곡물ㆍ육류ㆍ채소 등 음식물의 섭취량을 칼로리로 환산해 공급되는 비중인 칼로리자급률도 48.7%(2008년 기준)에 그친다. 우리 먹을거리의 절반을 외국에서 수입하는 실정인 것이다. 민 청장은 "우리나라는 미국ㆍ일본 등과 함께 식량안보위험지수가 굉장히 낮은 편에 속하지만 세계 곡물가격 변동에 따라 물가에 막대한 영향을 주는 등 식량에 대해 굉장히 취약한 구조를 보이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실제 국제곡물 가격이 4개월에서 7개월의 시차를 두고 국내물가에 반영됨에 따라 전문가들은 올해 상반기 중 제분 31%, 제당 30% 등의 물가상승을 예상하고 있다. 이어 그는 국제가격 충격을 완충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농수산물유통공사(aT)가 곡물수입회사를 준비하는 등 우리도 식량자급률 향상과 함께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겨울에 사료작물을 심는 것과 같이 국내외 생산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농진청은 국내 사료작물 자급기반 확대와 바이오에너지 자립도를 높이기 위해 거대억새 등 비식용작물을 이용한 바이오에너지 작물 육성 및 재배기술 개발 등을 중점 추진하고 있다. 또한 토지생산성 극대화를 통해 곡물자급률을 높이고 해외농업기술개발센터(KOPIA), 한ㆍ아시아 농식품기술협력협의체(AFACI) 등을 활용해 해외식량기지 확보에 적극 나서고 있다. 특히 민 청장은 전략적인 해외식량기지 다변화를 주장했다. 그는 "지금까지 해외농업개발을 보면 원조와 해외식량기지를 별개로 봤는데 자칫 상대국 입장에서는 제국주의 시대에 땅을 빼앗는 것으로 인식할 위험이 있다"면서 "성공사례를 만들고 그 다음에 확산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시아ㆍ아프리카 국가들과의 농업협력을 통한 신뢰구축이 우선이고 그 뒤에 식량단지를 만들어 위기상황에서 들여올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내세우는 것이 농업기술원조. 한국의 농업기술은 세계에서 7번째 안에 들어간다. 민 청장은 "농진청은 다른 분야보다 굉장히 높은 수준에 와 있는 농업기술을 전수해주고 농어촌공사는 관개시설 지원, 농촌경제연구원은 마을 종합계획 수립 등을 종합적으로 하게 되면 더 넓은 지역에서 새로운 새마을운동이 된다"면서 "몇몇 마을에서 이러한 인프라 개선을 통해 식량생산이 늘어나면 요즘 같은 인터넷 시대에는 성공사례가 급격히 확산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 청장은 지난해 쌀이 남아돌아 어려움을 겪었던 점을 의식한 듯 "그나마 쌀을 자급한다는 게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는 "과거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때만 해도 국내와 해외 쌀값이 4~5배 차이가 났지만 이제는 2배로 줄었다"며 "역발상으로 효율성을 높여 생산량을 늘리면 가격이 같아져 수출도 가능하다"고 전했다. 민 청장은 또 "북한은 계속 쌀이 부족한 상태여서 통일까지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덧붙였다. 민 청장은 수요공급 불일치로 인한 곡물가격 급등이 향후 더 심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해 곡물가격은 전년 대비 30% 이상 급등했다. 대표적으로 옥수수는 57%, 밀과 콩도 각각 43%와 28%나 상승했다. 그는 "수요 측면에서 봤을 때 '다산다사'에서 '다산소사' 추세로 바뀌면서 오는 2025년까지 인구는 계속 증가할 것이고 이는 곧 식량소비가 더 늘어나는 것"이라며 "중국ㆍ인도 등의 개발도상국들이 경제발전을 계기로 소비 패턴이 곡물에서 육류로 변화된 것도 소비를 촉진시킨다"고 설명했다. 사람들이 직접 먹는 곡물 외에도 육류를 기르기 위한 곡물까지 그 수요가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이외에 바이오에너지 같은 대체에너지 개발에 따른 수요도 증가하고 있다. 민 청장은 공급 측면에서도 온난화, 물 부족 등 과거에 예상치 못한 변수로 공급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점을 강조했다. 기상이변으로 세계 작황이 급격히 떨어지고 주요 곡물생산국들이 수출금지 조치를 내리면서 수급 불균형이 심화되다 보니 메이저 곡물 회사들은 사재기에 나서 식량이 투기대상이 되는 악순환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지난 50년간 녹색혁명을 통해 생산량이 급격히 늘어오다가 유전자변형농산물(GMO)이 보편화되지 못하면서 단위면적당 개체 증가율이 정체되고 있다"며 "대중화될 수 있는 새로운 녹색혁명이 일어나지 않는 한 공급이 늘어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여기에 농토가 도시화ㆍ상업화되면서 토지공급이 주는 것도 공급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민 청장은 글로벌 식량문제는 선진국이 풀어줘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세계 인구의 20%인 선진국 식량은 남아돌고 나머지 80%인 개발도상국은 식량이 부족하다"면서 "전세계 식량의 관점에서 보면 결코 부족한 게 아닐 수 있다"고 말했다.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의 남는 식량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개도국이 이를 수입할 수 있어야 하는데 경제가 어렵다 보니 그렇지 못하다. 또 원조를 하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좋을 수 있더라도 장기적으로는 농업생산 기반을 붕괴시킨다는 우려가 발생한다. 개도국으로서는 싸게 사는 것도 원조를 받는 것도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기에 강조되는 점은 해당 나라의 식량생산능력을 높이고 경제발전을 이루게 하는 것. 민 청장은 "식량을 원조할 수 없지만 기술은 줄 수 있다"며 "기술원조를 통해 생산량을 두세 배 키우도록 도울 수 있다"고 말했다. 다시 국내 농업으로 돌아가 미국, 유럽연합(EU) 등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한 시장개방 우려를 묻자 민 청장은 "올해 우리 농업의 새로운 갈등과 도전이 시작될 것"이라며 "반대하는 움직임 속에서도 해보자는 도전정신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농업 쪽에서는 아픈 이야기지만 자유무역의 흐름은 다만 완급만 조절할 뿐 막기는 힘들다"며 "품목별 경쟁력을 제고하는 등 배수진을 치고 향후 방향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반대만 하다가 더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농업금융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토로했다. 민 청장은 "농업 분야에서 좋은 아이템을 개발하더라도 투자받기는 정말 어려울 정도"라면서 "큰 틀에서 선제적으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농업금융이 발달돼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김동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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