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서경이 만난 사람] 현정택 한국개발연구원장

"美 서브프라임 파장 낙관 말아야"<br>내년 美성장률 1.5%수준까지 하락 가능성<br>中 실물경제 당분간 안정·증시는 큰 조정올것


“우리 경제가 직면한 가장 큰 위협요인은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에 따른 신용경색과 미국의 경기침체입니다. 내년 미국의 성장률은 1.5% 수준까지 떨어질 수 있습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의 현정택 원장은 일반인들의 관심권에서 멀어져버린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엔캐리 청산 등에 따른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이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중국에 대해서도 실물경제의 안정세는 당분간 지속되겠지만 너무 급하게 오른 증시는 큰 폭의 조정을 겪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 원장은 다만 내년 미국이 1%대의 저성장에 빠져도 국내 실물경제는 5% 성장이 가능할 것이라는 기존 전망은 유효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물가 문제와 경상적자에 대해서는 관계당국이 신경을 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가 급등과 인플레, 중국의 긴축정책 등 새로운 대외변수가 불거지고 있는데 내년 경기 전망을 변경할 용의는 없습니까. ▦KDI는 경제 전망을 잘 건드리지는 않습니다. 지금도 유가와 환율 등의 대외변수가 있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경기확장세가 지속되고 있다고 보고 올해 경제성장률 4.9%, 내년에는 5.0%의 전망치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물론 내년 경제에 불확실성이 큰 것은 사실입니다. KDI의 전망치는 미국 경제가 1.5% 성장에 그칠 정도로 악화되는 것을 전제로 하는데 미국 경기가 그보다도 나빠지면 5% 성장에는 차질이 생길 것이고 올해 수준만 유지돼도 그보다 높아질 것입니다. 이처럼 내년 전망은 기본 전제를 보수적으로 봤기 때문에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전망대로 간다고 봅니다. 다만 물가와 경상수지 관리에는 좀더 신경을 써야 할 것입니다. -‘미꾸라지 물가’ 논리가 요즘 흔들리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도 인플레 우려가 확산되고 있는데요. ▦지금까지 중국이 전세계의 구세주 역할을 해온 게 사실입니다. 그 핑계로 전세계가 돈을 많이 풀어왔고요. 풍부한 유동성에도 불구하고 물가가 3% 이내로 유지됐던 것인데 이제는 저물가를 지탱해온 중국이 스스로 인플레를 우려하기 시작했습니다. 중국산 제품 가격은 지금도 상대적으로 낮기는 하지만 이전과 같은 구세주 역할은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지표상으로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지난 10월에 3%에 달했는데 추세로 본다면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수치입니다. 또 최근의 유가 상승이 아직 소비자물가에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 걱정입니다. -유동성 과잉은 결국 금리정책으로 풀어야 할 문제인데 하지만 금리를 올리면 경기에 부담을 준다는 점을 통화당국이 우려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은 입장에서도 그 부분이 분명 딜레마일 것입니다. 일본을 보면 경기선행지표가 10년 만에 ‘제로’로 떨어지는 등 경기 대응이 죽을 쑤고 있지 않습니까. 국내 통화당국은 물가 압력에도 대응해야 하므로 당장 내일은 아니어도 어떻게 결정을 내릴지 주목됩니다. 물가 대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통화입니다. 효과가 크지는 않더라도 정부가 물가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전통적인 방법을 취할 필요는 있을 것입니다. -최근 정부가 유류세를 현행대로 유지하기로 한 데 대해 반발이 많은데요. ▦우리나라의 유류에 관한 세금구조는 분명 잘못된 부분이 있습니다. 특별소비세라는 명칭도 문제이고 부담금 등이 붙어 복잡한 구조 자체도 장기적으로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다만 고유가 대책으로 유류세를 인하하는 것은 무리라고 봐요. 일시적인 현상이면 모르지만 고유가가 앞으로도 지속된다면 소비를 억제하는 수밖에는 없는 것 아닙니까. 서민생활에 관련되는 등유 가격이나 생산 코스트에 직접 영향을 주는 부분이 있다면 조정을 해야겠지만 장기적인 고유가 시대에 석유소비를 늘리는 정책은 경계해야 합니다. -세계 경제 관점에서 볼 때 우리 경제의 위협요소는 어떤 게 있을까요. ▦사실 유가보다도 더 걱정되는 것은 미국의 서브프라임 문제입니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위기에 대한 국내 인식은 미국증시가 폭락하면 관심이 높아졌다가 오르면 사라지는 수준인데 해외 언론에서는 서브프라임 문제가 매일같이 지면에 오르고 있습니다. 국제금융시장 불안이 균형점을 찾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지금도 이 문제는 미국과 일본의 주택금융시장에 영향을 주고 미국의 경기침체 가능성도 커지고 있지 않습니까. KDI도 내년 미국 경제성장률이 올해 2.8%에서 1.5%까지 낮아질 것으로 봤는데, 이는 상당히 어려운 상황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일본 엔캐리 트레이드와 연계돼서 국제금융시장이 지속적으로 요동을 칠 가능성이 있습니다. -중국 경제에 대해서도 우려가 많습니다. ▦중국인들도 주식시장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중국증시의 주가이익비율(PER)이 30배 가까이 되니까 틀림없이 한번은 조정을 받을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죠. 하지만 10%대의 성장을 보이는 실물경제에 당분간 위기가 닥치지는 않을 것으로 봅니다. 경제가 흔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 시기가 당장 올해나 내년, 올림픽을 전후하지는 않을 것으로 봅니다. 그보다 궁극적으로는 정치적으로 사회주의, 경제적으로 시장경제를 채택한 시스템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공산당 엘리트들이 개혁을 몰고 왔기 때문에 이처럼 불가능한 시스템으로 30년간 발전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체제의 기본적인 모순을 생각하면 언젠가는 단순히 흔들리는 수준이 아니라 커다란 충격을 겪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금융ㆍ인수합병(M&A) 등의 전문가를 양성해 미리 대비를 해둔다면 과거 외환위기 때 외국이 그랬던 것처럼 중국에 가해지는 충격을 우리의 기회로 활용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최근에는 대일 적자, 대중 흑자로 유지돼온 한ㆍ중ㆍ일 삼각 무역구도가 붕괴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앞으로 한참 동안은 대중 흑자가 계속될 것입니다. 중국이 한국에서 들여간 반제품을 다시 수출하는 형태가 지속될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지금 세 나라의 문제는 서로 너무 협력을 안한다는 데 있습니다. 앞으로의 무역정책에서 한국은 한미, 한ㆍ유럽연합(EU) 간 자유무역협정(FTA)을 조속히 체결하는 한편 중국ㆍ일본과도 FTA 체결을 서둘러야 합니다. 중ㆍ일 간 FTA는 실현 가능성이 없지만 이들과 한국은 조금 편한 관계이므로 우리는 상대적으로 유리한 입장입니다. 그것이 우리 경제의 ‘샌드위치 위기’ 극복의 전략이 될 것입니다. -대선주자들이 저마다 6~7% 이상의 성장률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의 잠재성장률은 4%대로 떨어진 상태입니다. 5% 이상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까요. ▦사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저 자신과 KDI 박사들 간에 이견이 있습니다. 박사들은 저출산ㆍ고령화 등 잠재성장률을 떨어뜨리는 여러 요인을 감안해 잠재성장률 4.6%를 제시하고 있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5%대 이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아일랜드의 경우 국민소득 5만달러라는 높은 소득수준을 유지하면서도 지난 5년, 10년간의 성장 추세는 우리에 뒤지지 않습니다. 싱가포르 역시 잘살면서 성장률은 높은 나라입니다. 소득이 올라간다고 성장률이 내려가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죠. 우리나라도 장기적으로 성장률이 낮아지는 요인이 있지만 5%대 이상은 유지해야 합니다. -오는 22일은 우리나라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공식 요청한 지 꼭 10년째 되는 날입니다. 지난 10년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위기에 관한 부분은 극복이 됐다고 봅니다. 경제시스템도 많이 개선됐고요. 하지만 전체적인 규칙(rule)과 정치 등을 보면 선진국이 되기는 아직 멀었습니다. 특히 정치는 개도국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사회적 자본도 낮은 수준입니다. 사회적 자본이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시스템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지, 즉 사회의 상호 신뢰나 네트워크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기업 구조 측면에서도 글로벌 스탠더드보다 상대적으로 떨어지고 노사 문제 역시 규칙이 없어요. 또 한가지, 우리나라는 정부 의존도가 매우 높아 아직도 국민들은 정부가 전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 보니 정부는 규제를 하고 쫓아다니면서 감시를 하게 됩니다. 그 결과 공장 하나를 설립하는 데 경쟁국은 10~15가지면 되는 절차가 국내에서는 60가지에 달하게 되고, 다른 곳에서는 2개월 걸리는 일도 6개월씩 걸린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 "잠재성장률 5%이상 달성하려면 교육質개선 창의적 인재 육성을" 현정택 원장은 내년에 들어서는 새 정부가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로 공무원 연금개혁과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체결을 꼽았다. 현 원장은 "비전 2030의 5개 부문인 성장동력과 세계화, 사회적 자본, 복지(분배), 인력양성 가운데 가장 시급한 몇 가지 과제를 꼽는다면 우선 공무원 연금개혁, 서비스산업 중에서는 방송통신 융합을 들 수 있다"며 "대외적으로는 한미, 한ㆍ유럽연합(EU) FTA 비준 체결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공기업 민영화도 차기 정부의 직면 과제로 지적했다. 그는 이와 함께 아일랜드ㆍ싱가포르 등을 얘로 들면서 소득이 올라간다고 해서 성장률이 내려간다는 것은 아니라며 우리도 잠재성장률을 5% 이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의 질을 높여 창의적인 인력을 탄력적으로 공급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설명했다. 그는 "교육의 질 개선을 위해 예산 증액은 필요조건은 될지 모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며 "교육환경 개선과 하향평준화를 유발하는 교육 탈피,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권 확대 등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대외적으로는 한미 FTA의 차질 없는 출범과 EU와의 성공적인 협상 타결, 중국과의 안정적 교역환경 조성이 필요하다고 현 원장은 말했다. 특히 중국은 한국 경제의 성장을 뒷받침하는 요인인 만큼 "한중 FTA나 동아시아 자유무역지대 등의 도입 필요성도 적극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현 원장은 강조했다. ● 현정택 원장 약력 ▦49년 경북 예천 출생 ▦71년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ㆍ행정고시(10회) 합격 ▦80년 매사추세츠대학 경영학 석사 ▦93년 미 조지워싱턴대학교 경제학박사 ▦95년 재정경제원 대외경제국장 ▦97년 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표부 경제공사 ▦2001년 초대 여성부 차관 ▦2002년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 ▦2003년 인하대 국제통상학부 교수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