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금산법 '네 탓' 타령

하도 어이가 없으면 실소가 나오게 마련이다. 따지고 보면 심각한 문제인데 희극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요즘 국정감사장을 달구고 있는 ‘금융산업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 이른바 ‘금산법’ 파동이 바로 그렇다. 여당 측의 ‘금산법 개정안’은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과 삼성카드의 에버랜드 지분 가운데 5% 이상은 처분하도록 해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등 오너 일가의 영향력을 무력화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왜곡된 지배구조 개선’이라며 찬성하는 측이나 ‘주식 처분 소급은 위헌’이라는 반대 의견 모두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다. 문제는 금산법 제정 및 개정안을 주도했던 청와대, 여당, 정부 부처 등 어느 쪽도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데 있다. 정부는 올 7월 개정안을 국무회의에서 통과시키면서 삼성 측이 에버랜드와 삼성전자 지분을 보유할 수 있도록 부칙 조항을 만들었다. 하지만 입법예고에도 없던 부칙이 반영된 경위에 대해 어느 쪽도 속 시원한 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금융감독위원회의 건의를 수용했다”(재정경제부) “법률안의 국회 제출 권리는 재경부가 갖고 있다”(금감위)며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여당 등 정치권은 ‘삼성 로비설’을 들먹이며 재경부와 금감위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요즘 분위기 탓인지 여당 내 신중론은 숨을 죽이고 있다. 한나라당도 지난 7월에는 여당안에 반대 당론을 정한 듯하더니 ‘삼성 때리기’에 가세한 상황이다. 공정위도 입을 닫고 있다. 공정위는 98년 12월31일 삼성과 중앙일보의 계열 분리를 승인해준 부처이다. 이는 97년 금산법이 제정된 후로 삼성카드가 중앙일보로부터 한도 이상의 에버랜드 지분을 넘겨받는 과정에서 일부 책임이 있다는 얘기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태도다. 노 대통령은 27일에 “(금산법에 대한) 삼성의 태도에 좀 문제가 있었다”고 말했다. 마치 남의 집 일을 말하는 듯하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정부 측 금산법 개정안을 국무회의에서 통과시킨 국정의 최고 책임자다. 코미디가 따로 없다. 금산법 파동은 너도나도 선장이 되겠다고 법석을 피우다가 정작 암초를 만나면 ‘네 탓’하기에 바쁜 ‘한국 경제호’의 현주소를 보는 듯해 씁쓸하기 짝이 없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