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는 기발한 응수를 보여주지 않았다. 해설실의 목진석이 ‘더할 나위 없이 백이 좋은 그림’이라고 말했던 바로 그 수순을 묵묵히 밟았다. 흑39 이하 백42까지. 구리도 이 진행이 그리 즐겁지는 않았겠지만 별다른 대책이 없다고 본 듯하다. 흑43으로 평범하게 탈출하자 그런 대로 흑도 그리 비관적인 형세는 아니다. 목진석은 헛기침을 하며 덧붙였다. “백이 좋긴 하지만 그저 백지 한 장의 차이일 뿐입니다.” 최철한은 신중했다. 우변의 흑을 마구잡이로 공격해서는 효과가 의심된다고 보고 44로 세력의 요충지를 점령하고 본다. 흑45는 실리의 요충. 백46은 자기 말을 보호하면서 공격을 노리는 급소. 백48이 검토진의 웃음을 샀다. “그 자리가 그렇게 급한가?” “백이 진다면 완착으로 지목될 거야.” 흑49가 완착이었다. 백이 가에 받아주면 계속해서 나로 압박할 작정이었겠지만 아전인수격 구상이었다. 최철한이 그곳을 외면하고 50으로 붙이자 흑49로 둔 체면이 말이 아니다. 백52는 12분의 장고를 거친 수. 목진석은 참고도1의 백1 이하 7을 예상하고 있다가 백52를 보자 ‘역시 철한이가 나보다 고수로군요’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참고도1의 진행은 흑의 형태를 두텁게 만들어주는 의미가 있으므로 최철한은 실전보의 52로 참은 것이었다. 흑59는 참고도2의 흑10까지를 주문한 수였는데 그것을 간파한 최철한은 60으로 능청스럽게 물러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