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베트남이 대치하고 있는 남중국해 분쟁해역에서 베트남 어선이 중국 선박의 공격으로 침몰함에 따라 양국 간 긴장이 다시 고조되고 있다. 여기에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베트남에 대한 해상지원 의사를 밝혀 분쟁의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27일 베트남 현지언론들은 정부 당국자의 발표를 인용해 26일(현지시간) 오후 남중국해 파라셀제도(중국명 시사제도, 베트남명 호앙사) 부근 해역에서 중국 어선이 베트남 어선을 들이받아 침몰시켰다고 보도했다. 어선이 침몰한 곳은 중국과 베트남 간 분쟁해역으로 중국이 지난 2일부터 원유 시추작업 중인 지점에서 남쪽으로 불과 17해리 떨어져 있다. 베트남 정부 당국자는 "중국 선박 40여척이 조업하던 베트남 어선을 포위하고 이 중 한 척이 선체를 들이받았다"고 밝혔다.
베트남은 이달 초 중국이 원유 시추를 시작하자 국제법상 베트남 해역인 대륙붕과 배타적경제수역(EEZ)에서 원유 시추를 강행하고 있다며 즉각적인 철수를 요구했으며 선박을 보내 시추작업을 저지하고 있다. 사고지점은 베트남의 EEZ에 속해 있으며 전통적 어업지역이라는 게 베트남 측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자사의 웨이보 계정을 통해 "베트남 어선이 파라셀제도 근처에서 중국 어선의 조업을 방해하다가 침몰했다"고 반박하며 "베트남 측이 2일부터 중국의 원유 시추를 방해해왔다"고 주장했다.
양국 간 영유권 분쟁이 불거진 2007년 이래 선박 침몰로까지 이어진 해상충돌은 이번이 처음이다. 중국은 선박 충돌도 불사함으로써 남중국해 분쟁에서 절대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수리핑 중국사회과학원 교수는 "이번 일은 중국 입장에서는 절대 타협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풀이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중국은 2012년 필리핀과의 스카버러섬 영유권 분쟁과정에서 필리핀 선박과 대치하며 베트남에서 일본에 이르는 모든 영유권 분쟁국가에 타협은 없다는 강한 메시지를 전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처럼 높아진 충돌 수위는 베트남의 반중감정만 더욱 자극할 것으로 우려된다. 베트남 정부는 군사충돌은 피하는 대신 국제사법기관 제소를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반중시위는 더 격렬해질 것으로 보인다. 쩐반린 베트남 다낭성 어업협회장은 중국의 어선 충돌을 '살인행위'라고 규탄하며 "중국 측의 비인간적 행동에 맹렬하게 저항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미 13~14일 남부 빈증성과 북중부 하띤성에서 과격 반중시위가 발생해 중국인 노동자 2명이 죽고 100여명이 다쳤다. 베트남 국영 VTC방송은 최근 홈페이지에 중국 영화 3편의 방영을 중단하고 대신 한국 콘텐츠를 방영하는 등 반중기류가 전반에 확산된 상태다.
남중국해를 둘러싼 대립이 악화되는 가운데 일본도 중국 견제를 목적으로 개입 가능성을 시사해 분쟁에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아베 총리는 27일자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아시아 지역에서 일본의 역할을 늘리겠다"며 베트남에 대한 해상지원을 강화하겠다는 의사를 나타냈다. 그는 부득담 베트남 부총리가 22일 일본을 방문해 이른 시일 내 순시선을 제공해줄 것을 희망한 점을 지적하며 "그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시각에서 선박 제공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WSJ는 "아베 총리가 중국과 영유권 분쟁 중인 국가들에 온건하지만 상징적으로 상당한 수준의 해상지원을 확대해왔다"고 지적했다. 아베 총리는 중국을 겨냥해 "무력이나 강압으로 현재 상태를 변화시키는 행위를 절대로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견제의 목소리를 높였다.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실시하고 있는 원유 시추에 대해서도 "일방적 활동이며 긴장만 고조시킨다"고 비난했다.
한편 또 다른 남중국해 수역에서 중국과 마찰을 빚고 있는 필리핀도 중국의 강경한 태도에 우려를 표명했다. 베니그노 아키노 필리핀 대통령은 26일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이 무력을 앞세워 '벼랑 끝 외교'를 하고 있다"며 "상황을 걷잡을 수 없는 지경으로 몰고 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중국을 자극하기를 원치 않는다면서도 중국이 2002년 서명한 '남중국해 당사국 원칙'을 준수하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또한 "베트남에서 일어나는 일은 결국 필리핀에서도 일어난다"며 반중시위 가능성도 우려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