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10월 29일] 썰물은퇴와 퇴직연금

베이비 붐 세대의 맏형 격인 1955년생들이 올해로 55세가 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베이비 붐 세대의 대량 은퇴가 시작됐다. 지난 1955년에서 1963년 사이에 태어난 인구 714만명 가운데 549만명 정도가 현재 노동시장에 몸을 담고 있다. 이들이 앞으로 10년에 걸쳐 근로현장을 떠나는 이른바 '썰물 은퇴'가 시작된 것이다. 베이비 붐 세대의 은퇴는 거대한 인구집단이 동시에 고령 인구에 편입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체 인구의 14.6%에 해당하는 거대 집단이 고령인구로 편입되면서 근로자 개인이나 기업ㆍ국가 모두에 상당한 영향이 예상된다. 퇴직연금 도입 5년 가입률 저조 근로자의 관점에서 보면 은퇴는 또 다른 시련으로 다가온다. 베이비 붐 세대는 그동안 부모 부양과 자녀 교육 등을 도맡아 오면서 제대로 노후준비를 하지 못했다. 실제로 베이비 붐 세대가 세대주인 가구의 평균 자산은 3억1,000만원 정도로 우리나라 전체 평균보다는 10% 정도 많지만 미국(9억원)이나 일본(7억6,450만원) 등 다른 선진국에 비해서는 상당히 적은 수준이다. 그것도 전체 자산 가운데 70% 이상이 환금성이 떨어지는 부동산이어서 질병 등 위급 상황에 대처하기가 어렵다. 삼성생명이 최근 전국의 2,000가구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응답자들은 은퇴 후 필요한 자금의 60% 정도만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이들 가운데 70% 이상이 노후자금 준비 수단으로 국민연금을 꼽았다는 점이다.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은 올해 49%에서 오는 2028년에는 40%까지 떨어진다. 은퇴 전 소득의 40% 정도만 국민연금으로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한 달 소득이 300만원인 근로자의 경우 120만원 정도만 받을 수 있는 셈이다. 그것도 40년간 보험료를 정상적으로 납입했을 경우가 그렇다. 하지만 최근 구조조정 등으로 조기퇴직하는 근로자들이 늘어나면서 국민연금을 수령하기까지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간의 공백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 기간 동안에 국민연금을 납입하지 못할 경우 나중에 받게 되는 연금액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결국 국민연금이라는 공적 연금만으로는 안정적인 노후생활을 할 수 없는 셈이다. 이 때문에 주목받고 있는 노후대비 수단이 퇴직연금이다. 우리나라는 2005년에 퇴직연금제도가 도입돼 외형상으로는 국민연금ㆍ개인연금과 함께 다층 노후보장체계가 구축됐다. 하지만 퇴직연금은 도입 5년이 지났지만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8월 현재 퇴직연금에 가입한 근로자 수는 199만1,488명으로 5인 이상 사업장 전체 근로자의 27%에 불과하다. 그러면 퇴직연금이 왜 아직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기존의 퇴직금을 퇴직연금으로 전환할 유인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현재 퇴직연금에 가입할 경우 근로자에게 주어지는 세제혜택은 개인연금을 포함해 연간 300만원까지 소득공제를 해주는 것이 전부다. 내년에는 이것이 400만원으로 늘어난다고는 하지만 1만6,500달러(1,861만원) 수준인 미국 등 선진국에 비하면 턱없이 적다. 이에 전문가들은 개인연금 등과 혼합돼 있는 세제를 과감히 분리해 퇴직연금에 별도의 세제혜택을 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세제혜택 확대 등 유인책 필요 퇴직연금 상품에 대한 투자제한이 지나치게 엄격한 점도 문제다. 우리나라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에서는 확정기여형(DC) 상품의 주식편입 비중을 40% 이내로 제한하고 있다. 이 때문에 퇴직연금은 주식 비중이 60% 이상인 주식형 펀드에는 투자할 수가 없다. 미국이나 영국 등 선진국도 '몰빵투자'나 이해상충 방지 등의 규정은 두고 있지만 투자 자산별 규제는 없다. 이에 따라 선진국에서는 젊을 때 주식 비중을 높였다가 나이가 들수록 이를 줄여가는 라이프사이클 펀드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정부가 퇴직연금의 안정성을 염려하는 취지는 이해하나 획일적으로 투자를 제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는 근로자들이 퇴직연금을 통해 노후대비를 할 수 있도록 개인들의 성향에 따라 다양한 상품에 투자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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