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명품 장수기업 키우자] <5> 고용확대 전제로 세제 지원을

수백억 상속세에 경영권 매각… 핵심 자산만 탈취당하기 십상

고용유지땐 징수액 감면 시급

증여세 과세특례제도 확대해 사후보다 사전승계 유도 필요

11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2차 '명문 장수기업 정책포럼'에서 정태일(앞줄 왼쪽 두번째), 이동기 명문 장수기업 정책포럼 공동위원장, 강상훈 한국가업승계기업협의회 회장과 중소기업인, 학계 전문가 등이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중기중앙회


'개인은 가도 기업은 영속되어야 한다.'

대전 대덕단지에 자리 잡은 남선기공에는 창업주 故 손중만 회장의 흉상과 함께 창업정신이 담긴 문구가 적혀있다. 1950년 창업한 손 회장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후 대표자리에 오른 손종현 회장은 수 차례 위기를 극복하며 530평이던 공장을 대전과 옥천 2곳 4,000평 규모로 키울 만큼 회사를 성장시켰다. 대학을 졸업한 뒤 16년 간 경영수업을 받으며 '업'을 이은 손 회장의 '기업가 정신'이 큰 몫을 했다.


이같은 남선기공의 사례와는 달리 기업의 영속성을 이어가고 나아가 장수기업으로 거듭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도 많다. 대표적인 걸림돌이 상속ㆍ증여세 부담이다.

수백억 원의 상속세를 내고 나면 기업이 휘청거리기 마련이다. 전태영 경상대 교수는 "상속규모를 줄이기 위해 기업을 키우지 않으려는 모습이 보이는 등 기업활동에 제한이 많다"며 "징수금액이 크지 않은 상속세로 인해 고용을 늘리지 못하면 국가경쟁력에도 도움이 될 수 없다"고 밝혔다.

국내 대표 종자회사 농우바이오는 지난해 8월 고희선 회장이 타계하면서 1,200억원의 상속세가 부과되자 유족들이 납부자금 마련을 위해 경영권 매각에 나섰다. 다음달 농협경제지주와의 계약 마무리를 앞두고 직원들의 완전고용승계 문제로 갈등을 빚었다. 광통신용 광신호 분배장치 업체 우리로광통신 역시 창업주 김국웅 회장이 별세하면서 140억원에 달하는 상속세를 감당하지 못한 유족들이 지난해 보유 주식 200만주를 매각하며 경영권을 넘겨줬다.


기업이 새 주인을 맞아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어가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세금 문제로 갑작스럽게 매각을 추진할 경우 경영권 분쟁에 휩싸이거나 기업사냥꾼에게 핵심 자산만을 탈취당하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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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올해부터 가업 상속공제 대상기업을 과거 직전 연도 매출액 2,000억원 이하에서 3,000억 원 미만으로, 가업 상속공제는 최대 500억 원까지 확대했다. 그럼에도 많은 기업인들은 까다로운 요건을 보다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7년간 고용을 100% 유지하면 상속세를 면제해주는 독일과 같은 선진국에 비해 가업승계에 대한 세제지원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고용유지나 확대를 전제로 상속세를 전향적으로 감면해주는 사회적 합의가 시급하다는 제언이다.

중견기업연합회 세제금융위원회 위원장인 박정부 한웰 회장은 "당장 세수가 떨어진다는 점을 볼 게 아니라 고용창출, 이익창출 후에 세금 납부를 하도록 해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면서 "업을 접거나 매각하면 세금을 부과하는 식으로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제시했다.

아울러 중견·중소업계는 상속인 1인에게 가업 전부를 상속해야 하거나 10년 동안 동일 업종을 유지해야 하는 조항 등 '신발 속 돌멩이'가 여전히 존재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소순무 율촌 변호사 역시 "후계자를 1인 상속만 가능하게 한 것은 문제가 있고, 30억만 공제되는 증여세는 사실상 생전에 하기 힘들기 때문에 증여세도 상속세만큼 풀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성공적인 세대교체를 위해서는 기업 대표가 사망한 후 갑작스럽게 이뤄지는 사후승계보다는 사전에 미리 준비하는 사전승계가 늘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이를 위해 증여세 과세특례제도의 실효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것. 현재 증여세는 과세가액에서 5억원을 공제 후 10%의 특례세율을 적용해 부과하는데, 한도 확대와 함께 납세유예와 상속시 정산 등의 개선이 요구된다.

유영희 유도실업 회장은 "우리도 일본처럼 97세 아버지가 67세 아들한테 가업을 이어주는 현실이 찾아오면 무슨 의미가 있겠냐"면서 "상속세와 증여세를 같은 시각에서 바라봐서 완화가 이뤄져야 한다"며 강조했다. 이창호 중소기업중앙회 가업승계지원센터장은 "경영자의 사후 상속 과정에서 500억원까지 세금을 면제해주는 가업상속 공제와 같이 증여세 과세특례의 한도를 500억원까지 늘리고 대상기업도 기존 법인기업에 개인기업을 추가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결국 중견ㆍ중소업계의 바람대로 전향적인 세제지원이 이뤄지려면 가업승계가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제2의 창업'이라는 사회적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아직 상당수는 상속이라고 하면 재산을 물려받는 것으로만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준호 중소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민들은 각종 세금을 다 내는데 왜 중소기업만 깎아줘야 하냐는 눈총과 함께 특혜 논란이 나올 수 있다"며 "사회에 끼친 공로가 얼마나 되는지 국민들한테 설득할 수 있는 논리와 사례를 먼저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 스스로 지역경제, 지역고용에 활력을 주기 위한 노력과 함께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펼쳐나가야 한다. 공론화 과정을 통해 국민들의 거부감을 없애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게 관건인 셈이다. 명문 장수기업 정책포럼 공동위원장인 절삭공구 제조업체 한국 OSG의 정태일 회장은 "부의 승계처럼 비춰지는 부정적인 국민정서로 가업승계가 아직은 힘든 분위기"라며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 사라지지 않도록 사회환원도 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지역사회에 베풀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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