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리빙 앤 조이] "섹시해지려면 바지 입어라"

■ 여성 바지의 변천사<br>샤넬, 승마바지로 대중화<br>일부 국가에선 아직도 금기<br>스키니진 등 섹시 아이템 부상





인류 역사에서 바지(팬츠)가 사랑받은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기원전 초원을 달리던 유목민이나 기원후 야만족으로 분류되던 이들이 바지를 즐겨입었던 탓에 바지는 오랜 세월 환영받지 못했다. 남자들이 외투 없이 팬츠를 전면에 드러낸 것도 100여년밖에 되지 않았고 여자들이 팬츠를 입은 것은 몇십년에 불과하다. 아직까지 일부 사회나 국가에서는 여성이 바지를 입는 것을 제한하고 있지만 이 같은 금기도 서서히 깨지고 있다. 최근 수단에서는 공공 장소에서 바지를 입었다는 이유로 벌금형을 받은 한 이슬람 여성이 이른바 ‘바지 소송’을 감행했다. 여성의 바지 착용을 금지하던 북한에서도 최근 바지를 입는 여성이 늘어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때마침 바지를 애용한 신여성의 대명사인 디자이너 가브리엘 샤넬의 일생을 그린 ‘코코 샤넬’이라는 영화도 상영중이다. 여성 해방의 상징처럼 등장한 여성용 바지는 짧은 시간에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일상복으로 자리잡았다. 이제 여성 바지는 편리함을 넘어 개성과 섹시함을 표현하는 아이템으로 활용되고 있다. 프랑스의 유명 작가 아나톨 프랑스는 죽은후 백년이 지나 다시 태어난다면 무슨 책을 읽겠느냐는 질문에 “우선 패션 잡지를 읽을 것이다. 패션 잡지 한권으로 지난 백년간 모든 것을 한눈에 알수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처럼 패션 역사는 인류 문명의 역사를 대변해준다. 여성 바지는 단기간만에 패션뿐아니라 사회 문화적으로도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여성 바지의 변천사를 짚어봤다. ▦바지는 음란하다?=수단 형법 제152조는 공공 도덕을 위반하거나 음란한 옷차림을 한 사람을 태형 40대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1990년 이후 1,000여명의 여성들이 이 법에 따라 태형에 처해졌다. 그런데 이에 대해 처음으로 문제를 제기한 사건이 발생했다. 수단 정부에 비판적인 칼럼을 써온 여성 언론인이자 전 유엔 직원인 루브나 아흐메드 알 후세인(43)이 사건의 주인공이다. 그는 지난 7월 수도 하르툼의 한 레스토랑에서 공공 장소에서 바지를 입었다는 이유로 다른 여성 12명과 함께 경찰에 체포됐다. 이들 중 10명은 태형 10대의 약식 처벌을 받고 풀려났으나 후세인과 다른 여성 1명은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여성의 옷차림을 지나치게 규제하는 이슬람식 법 조항에 과감히 반기를 든 것이다. 후세인은 면책권이 있는 유엔 직원 일까지 그만두고 재판에 나서면서 “이번 사건이 수단 여성의 권리를 찾기 위한 시험대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법원 주변에서는 40여명의 여성들이 바지를 입은 채 후세인을 지지하는 집회를 열다 연행됐는가 하면 하르툼의 거리와 카페에서는 매일 수천명의 여성이 체포 위험을 무릅쓰고 바지를 입은 채 무언의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재판에서 후세인은 벌금 200달러를 선고받자 벌금 납부를 거부하고 감옥행을 자청했으나 언론인 노조가 벌금을 대납해 석방됐다. 후세인의 변호인은 “후세인은 부당한 대우를 받았고 자신을 변호할 적절한 기회를 얻지 못한 것으로 생각한다”며 항소법원과 헌법재판소에 모두 항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후세인의 재판 결과에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바지는 해방의 상징=여성복에 디자이너로서 최초로 바지를 도입한 사람은 가브리엘 샤넬이다. 영화 ‘코코 샤넬’에서 그는 승마 바지를 디자인해 입고 나오는 ‘혁명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여성이 스커트를 입고 말을 타던 시대에 남자 옷을 재단해 만든 통넓은 승마 바지를 입고 말을 타는 장면은 샤넬의 개성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샤넬은 “간편함은 모든 진정한 우아함의 기본이다. 나는 여성들에게 자유를 주었다. 장식과 레이스와 코르셋과 패드 때문에 땀에 절어 있던 여자들의 몸을 진정한 자신들의 몸으로 되돌려주었다”고 회고한다. 샤넬 스타일은 시대 변화와 딱 들어맞았던 점도 크게 작용했다. 전쟁터에 아버지와 남편, 오빠를 내보낸 여성들이 일터로 나오면서 코르셋이나 거추장스러운 드레스는 비현실적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60년대 급진적인 여성 해방 물결에 힘입어 여성복에 일어난 또다른 혁명은 이브생로랑의 시도다. 이브생로랑은 정장 바지와 가죽 재킷처럼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아이템을 여성복으로 옮겨와 ‘패션 혁명’을 만들어냈다. 그는 여성 정장에 바지를 도입했는가 하면 ‘스모킹 룩’이라는 이름으로 남성 턱시도를 여성복에 접목시키기도 했다. 패션계에선 “샤넬이 여성에게 자유를 주었다면 이브생로랑은 여성에게 파워를 준 디자이너”라고 평가한다. 이 같은 여성복의 역사는 세월이 흐를수록 돌고 돌면서 유행을 낳는다.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지난해 4월 “미국의 콘돌리자 라이스 전 국무장관이나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 등 파워풀한 여성들이 등장, 역사적으로 여성의 파워가 두드러지는 시기에 남성적인 스타일의 옷이 유행하게 된다”는 기사를 실었다. ▦바지는 실용적이다=바지를 입지 않던 북한 여성들도 최근들어 바지를 입는 여성들이 점차 늘고 있다. 중국의 동포 매체인 온바오닷컴은 7일 중국 인민일보 자매지인 환구시보(環球時報)의 평양발 보도를 인용해 “4계절 내내 평양의 여군을 제외한 일반 여성, 여경 등은 치마를 입었지만 최근 바지를 입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전했다. 북한은 김일성 생전에 바지는 남자들이 입는 것이라고 강조해 여성들은 치마만 입어야 한다는 규정에 따랐으나 최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로 여성들도 바지를 입는 분위기가 퍼지고 있다. 노동신문 8월9일자도 ‘옷차림을 편리하고 보기 좋게’라는 기사에서 여성들에게 단정한 바지 차림을 권장하면서 청바지, 바지 치마 등 피해야 할 바지를 열거했다. 북한 당국이 주민들의 옷차림이 다양해지는 현실을 감안해 여성들의 바지 착용을 인정하는 실용적인 정책을 펴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근대 한국 여성들이 입은 겉옷 바지인 ‘몸뻬’(もんぺ)도 일제 실용 정책의 산물이다. 일제는 태평양전쟁의 전황이 악화되자 ‘국가총동원법’(1938)과 ‘비상시 국민생활개선기준’(1939) 등을 통해 직장 여성들에게는 표준복, 가정의 여성들에게는 몸뻬 착용을 강요했다. 바지와 비슷한 몸뻬는 보기는 흉했지만 도시 여성의 전시 방공 연습이나 농촌 여성의 식량생산 등에서 활동성과 기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이유로 장려됐다. 도입 초기 여성들은 몸뻬를 입으면 어른들 앞에서 가랑이를 벌리고 다닌다고 해 입기를 꺼렸다. 하지만 몸뻬를 입지 않은 여성은 버스ㆍ전차 탑승이나 관공서ㆍ극장 출입까지 금지하는 불이익을 당했다. 결국 여성들이 몸뻬에 익숙해지면서 일할 때 편리하고 보온효과도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폭넓게 보급됐다. 해방 이후 몸뻬는 자취를 감췄지만 한국 근대 여성의 첫 바지 차림이 된 셈이다. ▦바지는 스타일리시ㆍ섹시하다=여성들은 이제 편하다는 이유로 바지를 즐겨 입고 있지만 바지를 잘 입기란 쉽지 않다는게 패션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스커트는 허벅지까지 가려주지만 바지는 엉덩이부터 신경써야 하기 때문에 바지를 잘 입는다는 건 스타일리시하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몸짱, S라인 열풍 등에 힘입어 실제로 바지가 청바지나 핫팬츠 등 스타일리시하면서도 섹시한 아이템으로 진화하는 추세다. 최근에는 바지를 입고 볼륨 있는 라인을 드러내기 위해 일명 ‘힙업 성형’까지 성행할 정도다. 여성 그룹 ‘주얼리’에서 지난 2007년 솔로 활동에 나선 가수 서인영은 치골 부위 노출이 심한 숏팬츠를 입고 등장했다 방송 불가 지적이 일자 일명 ‘배바지’라 불리는 반바지로 연달아 화제를 모았다. 여성 아이돌그룹 소녀시대는 지난해 색색깔의 스키니진으로 연령대를 불문하고 수많은 남성 팬을 확보했고 올해는 ‘마린 룩’이라 불리는 핫팬츠로 또한번 ‘남심’ 공략에 성공했다. 청바지의 변신도 눈에 띈다. 원래 미국 서부 노동자들이 거친 사막에서 일하기 좋도록 내구성이 뛰어난 데님으로 만든 청바지가 젊음과 저항 문화의 상징을 거쳐 여성들의 섹시 아이템으로 변신한 것은 아이러니라 할만하다. S라인을 강조하는 청바지는 아슬아슬한 미니스커트나 아찔한 핫팬츠보다 더 섹시하고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 청바지가 잘 어울린다는 말은 각선미가 좋다는 뜻으로 봐도 무방하다. 전지현, 김아중, 한채영, 한예슬 등 여자 연예인들이 앞다퉈 자신의 이름을 내건 청바지를 출시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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