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 "하룻새 벤츠 한대값 날아갔다" 한탄<br>손실 규모 워낙 커 펀드 환매는 엄두도 못내<br>증권사 긴급대책회의…"피해 크지않다" 해명도
| 16일 증시가 대폭락하자 여의도 증권선물거래소 직원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코스피지수 흐름을 체크하고 있다. /이호재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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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발 ‘금융 쓰나미’가 국내 증시를 덮쳤다. 증권업계 관계자들과 투자자들은 16일 개장과 함께 곤두박질치는 코스피지수를 보면서 고개를 떨구었다. 메릴린치 매각과 리먼브러더스의 파산 신청, AIG 위기설, 이에 따른 미국과 유럽 증시 급락 등 추석 연휴 기간 동안 줄줄이 쏟아진 악재 탓에 시장 급락에 대해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는 했지만 1,400선이 한순간에 무너지자 침통함에 빠졌다.
◇투자자, “예상은 했지만 하락폭 너무 커”=증권사 객장 분위기는 썰렁했다. 추석 연휴 직후인데다 전날부터 쏟아진 악재로 하락을 어느 정도 예견한 투자자들이 객장을 찾지 않았기 때문이다.
답답한 마음에 객장을 찾은 투자자들은 오늘 큰 폭의 하락을 예상했지만 속절없이 무너지는 지수를 보면서 한숨만 내쉬었다. 일부 투자자들은 말을 걸기가 무서울 정도로 싸늘한 분위기 속에서 객장의 전광판만 주시하기도 했다. 투자자 이모씨는 “추석 연휴 기간에 미국 뉴스를 확인 못했다”며 “9월 위기설이 끝났다고 해서 오를 줄 알고 나왔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투자자 김모씨는 “4% 정도 하락을 예상했는데 이렇게까지 빠질 줄은 몰랐다”며 “오늘만 해도 벤츠 한대 값을 날렸다”고 한탄했다.
전화 투자 상담 건수 역시 평소 수준에 머물렀다. 하나대투증권에서 투자 상담을 담당하는
정미숙 부부장은 “오늘은 안전 자산으로 갈아타야 하지 않냐는 문의가 많았다”며 “IMF 경험을 이야기해주면 심리를 안정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지만 주식 권유를 왜 했느냐는 식의 불만을 제기하는 투자자도 있다”고 말했다.
채국진 대신증권 본점 차장은 “투자자들도 예상했던 상황이기 때문에 왜 빠지냐는 전화는 안 오고 언제까지 빠질 것 같냐는 문의만 온다”며 “투자자들이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펀드 투자자들은 지수 하락폭이 너무 커 환매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한경준 한국투자증권 여의도PB센터 차장은 “투자자들이 환매에 대한 생각은 있지만 손실 규모가 워낙 커서 엄두를 못 내는 상황”이라며 “펀드런은 현재 같은 상황보다는 시장이 안정을 찾아서 반등할 때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증권사, 긴급 대책회의 개최… 피해 규모 크지 않다 해명 나서=증권사들은 이날 이른 아침부터 미국발 악재와 관련한 대책 회의를 가졌다. 우리투자증권은 “긴급 리스크 관리 위원회를 열어 리먼 사태와 국내 금융 시장에 미치는 영향 등을 분석하고 이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현대증권도 “경영진이 모두 참석한 가운데 리먼 파산 관련 국내 증시 및 당사에 대한 영향을 검토하고 HTS를 통해 고객들에게 안심할 것을 당부했다”고 발표했다.
일부 증권사들은 리먼과의 거래로 손실이 예상된다는 소문이 돌면서 개장과 함께 즉각적인 해명에 나서기도 했다. 대신증권은 “리먼과의 거래 관련 실질위험 노출액은 최대 5억원에 불과하다”며 “거래 상대방과 신용보강계약 등을 체결하고 스와프 계약을 통해 거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영증권은 “리먼과의 계약상 디폴트 발생 시 채권 및 채무를 상계하도록 돼 있는데 채무액이 더 많은 상황이라 손실 발생 가능성이 없다”고 해명했다.
현대증권도 “리먼과 거래했던 2,634억원의 ELS 중 96%를 스와프 형태로 전환해 자산으로 보유하고 있고 나머지 4%도 리먼 측에 지급해야 할 금액이 있기 때문에 어떠한 직간접적 손실도 발생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대증권은 “고객들은 리먼이 아닌 현대증권과 거래를 했기 때문에 리먼이 파산하더라도 고객들의 피해는 전혀 없을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한편 리먼브러더스 서울지점은 이날 영업금지 조치가 내려진 가운데 금융당국의 감독 아래 업무를 진행했다. 금융위원회는 리먼브러더스 서울지점에 대해 오는 12월15일까지 본사와의 거래 및 해외 송금과 자산 이전 등을 금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