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죽어 마땅한 사람이 있을까. 철학의 논제가 아니다.
누군가는 이 문제를 놓고 현실적인 고민을 한다. 바로 판사들이다.
사형제의 찬반론은 사형의 역사만큼 아주 오랜 이슈다. 우리나라도 헌법재판소 도마에 오를 정도로 논란거리다. 대입 논술의 주제나 입사 면접의 단골 질문으로 등장해 수험생과 입사 준비생을 괴롭히기도 한다.
얼마 전 저녁을 같이 먹은 한 판사가 이런 얘기를 했다. “우리 법원에 근무하는 K판사 알지? 그 판사 고생 좀 하게 생겼어… .” 한 주부를 잔인하게 살해한 피고인의 1심 재판을 맡은 판사 얘기였다. 범죄의 내용이 언론을 통해 익히 알려져 있는 터라 판결일을 코앞에 두고 고심이 클 거라고 했다. 기소한 검사는 이미 사형을 구형했다.
공소사실을 바탕으로 양형에 맞게 판결하면 될 텐데 뭐가 고민이냐고 물었더니 여론을 통해 받아야 할 선고가 정해져 버렸으니 고민 아니겠냐는 대답이 돌아왔다. 듣고 보니 그 말도 일리가 있는 듯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오원춘 사건의 1심과 2심 판결은 사형 판결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20대 여성을 납치해 살인한 오원춘에게 1심 재판부는 사형을, 2심 판사는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2심 판결이 나온 뒤 ‘1심과 2심 가운데 어떤 판결이 옳은가’라는 어리석은 질문을 여러 판사에게 해봤다. 놀랍게도 대부분의 판사는 죄의 내용과 우리 법원이 적용하는 양형을 따져볼 때 2심이 맞다고 대답했다. 1심 재판부는 사건 초기 들끓었던 여론을 반영한 판결이라는 해석을 곁들인 판사도 있었다.
판사는 죄의 값을 양형에 맞게 결정해야겠지만 때로는 여론을 고려해 선고하기도 한다. 흉악범 선고를 맡은 판사들이 최근 들어 고민하는 게 하나 더 있다고 한다. 바로 ‘사적 복수’다. 피해자나 그 가족들이 납득하지 못해 사적인 복수를 하게 만드는 선고라면 양형에 맞게 판결했어도 문제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 일부 판사의 생각이다. 시대의 분위기가 변하면 판결 내용도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허탈해진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는 또 다른 깨달음을 준다. 인간의 생각과 제도가 완벽할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