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3월8일] 뉴욕증권거래소(NYSE)


맨해튼의 나뭇가지(버튼우드) 밑에서 매매 수수료를 정한 지 25년이 지난 1817년. 월가 브로커들이 고민에 빠졌다. 매출부진 탓이다. 같은 기간 중 연방정부의 세수가 367만달러에서 3,309만달러로 9배 증가했음에도 월가에는 햇볕이 들지 않았다. 증권맨들은 ‘베끼자’는 단안을 내렸다. 대상은 필라델피아 증권거래소. 경쟁상대로 여겼던 필라델피아의 금융 중심지로서의 위상이 갈수록 높아진다는 위기감에 자존심을 접었다. 필라델피아의 금융 경쟁력은 두 가지. 무엇보다 1816년 인가된 제2합중국은행의 본점 소재지여서 연방정부가 발행한 채권의 거래를 도맡았다. 두번째는 거래소 시스템의 존재. 대형 자본들이 필라델피아를 선호한 이유다. 눈치 빠른 젊은이를 필라델피아에 파견해 거래소 운영의 노하우를 익힌 뉴욕 브로커들은 연 임대료 200달러를 내고 거래소 공간을 확보했다. 운영 방식은 필라델피아와 똑같은 회원제. 창립 멤버인 브로커 28명은 1817년 3월8일 공식적으로 뉴욕증권거래소를 출범시켰다. 마침 시기가 좋았다. 출범 직후 착공된 이리운하 건설에 투입된 공사비 700만달러(요즘 가치 35억달러)를 비롯해 뉴욕 인근부터 시작된 철도 건설 자금이 뉴욕거래소에 쏟아졌다. 1ㆍ2차 세계대전과 전후 주식 붐은 뉴욕거래소를 세계 최대 규모로 키워냈다. 베트남이 한국 증권거래소를 벤치마킹하듯 뉴욕이 필라델피아를 복사한 지 190년. 뉴욕에 완전히 뒤처진 필라델피아는 반도체지수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거래소의 존재에도 20세기 초반까지 월가 매매의 중심이었던 장외거래는 나스닥시장으로 변모했다. 뉴욕증권거래소는 시가총액 23조달러라는 규모에도 유럽거래소와 합병을 추진 중이다. 끝없는 변신이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