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서경이 만난 사람] 노대래 공정거래위원장

경제민주화 꾸준히 이행하되 전면에 내세울 필요는 없어

비정상의 정상화 변함 없지만 경제 부담 덜 가는 방향으로

리니언시는 차선 아닌 최선 … 개인권리 보장차원 활용해야

불공정 판단 어려운 신사업 분야 '동의 의결제' 적극 도입



노대래(사진) 공정거래위원장의 표정에는 자신감이 묻어나왔다. 지난해 총수 일가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 등 박근혜 대통령이 제시한 주요 경제민주화 입법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면서 업무 전반에 '탄력'이 붙었기 때문이다. 공정위 안팎에서는 "현시점에서 박 대통령의 국정과제를 가장 성공적으로 완수한 부처는 공정위 아니냐"는 평이 나오기도 한다. 이 때문인지 경제부처 개각론에서도 노 위원장은 한발 물러서 있다. 그래서였을까. 그의 발언은 깊고 거침이 없었다. 경제민주화 목소리가 사라졌다는 주장에는 "(경제민주화 목소리가) 내게는 더 크게 들린다"고 반박했고 취임 초기 부정적으로 평가했던 리니언시(자진신고감면제)에 대해서는 "정부가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돌아섰다. 또 네이버와 다음에 처음 적용해 논란을 일으켰던 '동의의결제'에 대해서도 "새로운 시장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고 일축했다. 집권 2년차를 맞은 박근혜 정부에 기업정책은 중요하다. 특히 경제검찰인 공정위가 어떤 방향을 지향하느냐가 기업정책의 가늠자가 될 수도 있다. 4일 서울 남대문 앞 공정거래조정원에서 노 위원장을 만나 공정위의 정책 전반에 대해 들어봤다.

한편에서는 집권 2년차인 올해부터 공정위의 역할이 축소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경제민주화라는 말이 최근 들어 쏙 들어갔고 기획재정부가 내놓은 올해 경제정책 방향은 '경제활성화'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한다.


노 위원장의 생각은 뭘까. 그는 정부 국정과제에서 경제민주화가 사라졌다고 보는 것은 잘못된 해석이라고 지적했다. 노 위원장은 "최근 박 대통령의 발언에서 경제민주화가 들리지 않는다고들 하는데 나는 아주 크게 들린다"고 말했다. 정부 정책기조인 일명 '비정상의 정상화'에는 원칙을 지키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고 공정거래문화 정착을 통한 정부의 경제민주화 실현 의지에도 당연히 변화가 없다는 얘기다. "경제민주화는 과제를 꾸준히 이행하되 전면에 내세울 필요는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도끼를 갈아 침을 만드는 '마부작침(磨斧作針)'의 자세로 차근차근 경제민주화를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경제민주화 과제 이행에 앞서 경제여건을 살필 수밖에 없다는 게 노 위원장의 생각이다. 그는 "전세계 경기가 활성화되고 있는데 이를 이용하려면 우리 경제가 먼저 살아나야 한다"며 "이런 상황에서 경제민주화를 앞에 내세우는 것은 올바른 판단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경제민주화는 당연히 필요하지만 과다한 부담을 유발시켜서는 안 되고 경제에 주름살을 덜 가게 하는 방향을 잡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기업들의 리니언시 대해서는 취임 초기와 달리 인식의 변화가 감지됐다. "예전에는 리니언시를 '세컨드베스트(차선)'로 생각했는데 요즘에는 '퍼스트베스트(최선)'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리니언시가 가진 긍정의 기능을 인정한 것이다. 노 위원장은 취임 초기 리니언시에 대한 과징금 감면혜택을 줄이겠다고 밝힌 바 있다. 리니언시는 담합에 참여한 기업이 이를 자진 신고할 경우 물어야 할 과징금을 감면해주는 제도인데 우리나라의 경우 담합을 주도한 기업이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이중혜택'을 받는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는 "리니언시 제도가 적용되면 기업들이 물어야 할 과징금이 면제된다는 비판이 있지만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기업의 담합 사실을 시인하게 해 손해배상 청구에 나설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측면이 있다"면서 "정부가 개인의 권리를 보장한다는 면에서 리니언시를 적극 활용하는 게 옳다"고 말했다. 기업의 리니언시는 노 위원장 취임 이후 크게 늘었다. 노 위원장은 불공정행위를 한 기업 임직원에 대한 적극적인 고발 방침을 세우고 과징금 감면제도도 대폭 줄여 기업들의 준법의식이 높아진 것 같다고 자평했다.

지난해 11월 네이버와 다음에 적용했던 '동의의결제'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겠다는 방향도 제시했다. 동의의결제는 불공정행위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운 특정 사건에 대해 사업자가 스스로 피해구제안을 내놓을 경우 법 위반 여부를 확정하지 않고 신속하게 사건을 종결짓는 제도다. 동의의결제가 적용된 것은 지난 2011년 제도 도입 이후 처음이었다. 물론 동의의결제로 돈과 면죄부를 맞바꾼 것 아니냐는 비판적 시각도 있다. 하지만 노 위원장은 동의의결제의 긍정적 효과에 주목했다. 그는 "공정거래법으로 확실히 규정하기 어려운 애플리케이션이나 소프트웨어 등의 신시장에 대해 심결절차를 거쳐 소송으로 가면 공정위가 법리적으로 궁한 처지에 몰릴 수 있다"며 "동의의결제를 통해 피해부터 구제하고 이러한 경험이 쌓이면 법에 적용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담합 등 법 위반이 확실한 사건에는 동의의결제를 적용할 수 없지만 갑론을박하는 안건에는 동의의결제를 적용할 만하다는 얘기다. 신시장에 대해서는 경쟁을 적극적으로 유도하는 정책을 펼쳐나갈 방침이다. 우리 경제가 성장력을 지속하려면 신시장 분야에서 혁신경쟁이 활성화돼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경쟁배제적인 불공정행위를 차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정보기술(IT)의 신기술은 수명이 짧아 불공정행위에 대한 적시교정이 더욱 요구된다"며 "앱스토어·포털·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플랫폼 사업자의 불공정행위와 기업용 소프트웨어 시장을 중심으로 저작권 남용 행위를 집중 감시할 것"이라고 전했다.

공공기관 정상화에 대한 노 위원장의 의지는 강했다. 무엇보다도 비정상의 정상화 차원에서 공공기관의 방만경영을 근절해야 한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공공기관들에는 이른바 '지대추구(rent seeking)' 행위가 여전히 만연해 있습니다. 공공기관을 정상화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공공기관들이 우월한 지위를 등에 업고 불공정행위를 일삼고 있지는 않은지 들여다보겠다는 것이다. 지대추구는 경제주체들이 독점이나 담합으로 정상 이상의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다. 그는 "중소기업 등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공공기관의 불공정거래 관행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경우가 많다"며 "공공기관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불공정거래 행위를 하는지 유형화하는 작업에 착수했다"고 설명했다. 다양한 신고를 접수하고 현장확인 작업을 벌여 공기업의 거래 상대방들이 느끼는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파악해보겠다는 얘기다. 공정위는 공공기관 불공정행위의 큰 얼개가 그려지면 직권조사에 착수해 실제로 처벌받는 공기업이 나타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노 위원장은 "불공정 소지가 있다면 규제가 불가피하다"고 덧붙였다.

국회에서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금융보험사의 의결권 제한 △중간금융지주회사 설치 등에 대해서도 이 같은 측면에서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이런 입법이 진행되면 지배구조 변경 등이 부차적으로 일어나게 되고 이 과정에서 개별기업은 '뉴머니(신규자금)'를 투입할 수밖에 없어 기업의 부담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이러한 일을 논의하기 좋지만 현재는 그렇지 않습니다. 공정거래 당국이 반드시 경제상황을 고려하는 것은 아니지만 코스트(비용)를 적게 들이도록 설계하는 게 기본원칙입니다." 경제검찰인 공정위의 칼도 경제상황을 고려해 탄력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얘기다. 물론 그는 "대통령 공약으로 국회에서 논의되는 안건에 반대할 이유는 없다"면서도 "하지만 무리하게 밀어붙일 필요도 없다"고 설명했다. 집단소송제와 사인의 금지청구제 도입에 대해서는 "권익구제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제도인 것은 사실이나 소송이 남발되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어 꼼꼼한 점검이 필요하다"고 신중한 입장을 내비쳤다.

정부 국정과제인 소비자권익증진기금은 일단 소규모로 출범시켜 론칭 자체에 의의를 두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는 "소비자기금을 출범시키려면 정부 재정이 투입돼야 하는데 세수사정이 어려운 상황에서 처음부터 기금 규모를 크게 잡으면 자칫 출범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며 "처음에는 출발을 조그맣게 하고 점차 이를 확대해가는 것이 정책실패를 막는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구체적인 규모는 내년도 예산안이 나와봐야 알 수 있지만 일단 수십억원 내외로 정해질 가능성이 큰 것으로 예상된다. 기금의 용처에도 일단 제한을 둘 수밖에 없다는 게 노 위원장의 기본방침이다. 그는 "법원에서 확정판결을 받아 피해가 명확한 상황에만 기금을 쓸 수 있도록 한다든지 피해구제 범위를 제한하고 점차 늘려나가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He is …


△1955년 충남 서천 △서울고, 서울대 법학과, 서울대 행정대학원 △행정고시 23회 △재정경제부 정책조정국장 △기획재정부 기획조정실장·차관보 △2010~2011년 조달청장 △2011~2013년 방위사업청장 △2013년~ 공정거래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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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대래 2기' 업무 방향은

"非행시 출신도 인사 배려" 성과 중시 본격화 예고

공정거래위원회 직원들의 최대 관심사는 '인사'다. 공석이던 부위원장(차관급)에 김학현 공정거래연합회장이 최근 임명되면서 1급인 상임위원·사무처장 등의 인사가 예고돼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최소화했던 국·과장급 인사도 올해는 대대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서인지 공정위 내부에서는 "이번 인사부터 노 위원장이 직접 선택한 인물들이 요직에 오르게 돼 실질적인 '노대래 2기'가 시작되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노 위원장은 최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인사와 관련해 "비(非)행시 출신 조직원들도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하겠다"고 밝혀 '깜짝인사'가 단행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오는 상황이다. 특히 시장감시국이나 카르텔조사국 같은 조사부를 중심으로 비행시 출신이 전진 배치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2월 중 인사가 마무리되면 업무성과 최대화를 중시하는 노 위원장의 색채가 본격적으로 공정위에 입혀질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경제기획원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노 위원장은 기획재정부 기조실장과 차관보, 조달청장, 방위사업청장 등을 거치면서 기존 업무관행에서 벗어나 끊임없는 변화를 조직원에게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하직원 입장에서는 모시기 어려운 깐깐한 상사인 셈이다.

한편 노 위원장의 서울대 법대 후배인 김학현 부위원장은 법리와 원칙을 중시하는 성향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에 따라 올해 역시 공정위 심결과정에서 기존 관행을 뒤엎는 판단이 나올 가능성이 작다는 게 내부 관계자들의 예상이다.

공정위의 한 고위관계자는 "올해 기업에 대한 직권조사가 크게 늘어날 개연성은 낮다"며 "신고사건을 충실히 처리하고 신(新)시장에 대한 규제를 확립하는 데 힘쓸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는 20일 실시되는 청와대 업무보고 역시 관심을 끈다. 지난해 경제민주화에 방점이 찍혔다면 올해는 소비자보호 등 디테일로 무게중심이 한층 더 쏠릴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국내 기업이 해외 경쟁당국으로부터 '과징금 폭탄'을 맞는 일이 잦아 이에 대한 대응책도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국내 기업이 해외에서 담합 혐의로 부과받은 과징금은 총 3조3,000억원에 달한다. 공정위의 한 관계자는 "해외 경쟁법에 대한 국내 기업의 이해가 낮은 측면이 커 이를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진=권욱기자

대담=민병권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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