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어떻게 살아왔느냐" 두살 때 헤어진 딸 부여잡고 하염없이 눈물

"아버지가 항상 미안해하셨어" 부친 유언장 누이에 전달

치매 증상 고령 부부·자매 "잘 모르겠어" 고개만 저어

60여년 만에 금강산에 재회한 이산가족들은 20일 눈물바다를 이뤘다. 먹먹한 가슴을 부여잡고 "어찌 살아왔느냐"며 안타까움을 전하는 가족은 물론 큰소리로 목을 놓아 울거나 연신 눈물만 훔치는 가족도 눈에 띄었다.

남측 이산가족 82명은 이날 오후3시께 금강산호텔에서 북에 두고 온 가족 170여명과 재회했다. 이들의 절절한 사연은 행사를 진행하는 당국자들은 물론 취재진도 눈물짓게 했다.


10년 전 사망한 부친의 유언장을 들고 누이를 만난 김명복(66)씨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김명복씨는 이날 누나 명자(68)씨에게 부친의 유언장을 전달하며 '항상 미안해하셨다'는 말을 전했다. 김명복씨는 "아버지가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하셨는데 결국 만나지 못하고 10년 전에 돌아가셨으며 어머니도 그즈음 돌아가셨다"며 "아버지의 유언을 전달했으니 저승에서도 어느 정도 마음을 놓으셨을 듯하다"고 말했다. 김명복씨의 가족은 1·4후퇴 때 김명자씨만 두고 모두 남쪽으로 내려와 가족 모두 김명자씨에 대한 죄책감을 갖고 살아온 것으로 전해졌다.

김명자씨도 이날 부모님의 사연을 들으며 연신 고개를 떨궜다. 김명복씨는 전날까지만 해도 누나를 알아보지 못할까 걱정하기도 했지만 보는 즉시 단박에 알아보며 핏줄의 끈끈함을 보여줬다.

손기호(90)씨는 두 살 때 헤어진 딸 인복(62)씨를 만나 목을 놓아 울었다. 손기호씨는 1·4 후퇴 때 남쪽으로 내려온 후 전쟁 중에도 수차례 남북을 왔다 갔다 했지만 정전 협정 체결로 북한에 가지 못했다. 두 살 때 집앞에서 배웅하던 딸의 모습이 손기호씨가 간직하고 있는 마지막 기억이다.


손기호씨는 "지금까지 딸이 살아있는 것만 해도 고마운 일"이라며 "죽은 아내가 자식을 두고 왔다는 생각에 많이 마음 아파했다"고 울먹였다. 손기호씨는 딸과 만나 "누구 밑에서 어떻게 자랐느냐"며 60년간 이어진 단장(斷腸)의 한을 울음으로 토했다.

관련기사



차규학(80)씨는 북에 두고 온 동생을 만나 60여년 만에 잡은 손을 놓지 못했다. 차규학씨는 동생이 여섯 살 때 헤어졌으며 부모님과 누이도 모두 북에 두고 왔다. 차규학씨는 동생 룡국씨를 만난 자리에서 "아버지는 사망하셨다는데 누나들은 어떻게 됐느냐"며 먹먹한 목소리로 사연을 물었으며 동생 차룡국씨는 사망한 가족들의 사연을 전하며 울먹였다.

이날 상봉장에는 납북된 가족들과 조우한 이산가족들의 모습도 공개돼 마음을 아프게 했다.

1970년대 서해상에서 북한으로 끌려간 납북 선원 박양수(58)씨와 최영철(61)씨는 이날 동생 박양곤(52)씨와 형 최선득(71)씨를 각각 만났다. 박양수씨를 포함한 쌍끌이 어선 오대양 61호·62호의 선원 25명은 1972년 서해상에서 홍어잡이를 하던 중 납북됐고 최영철씨가 탔던 수원 32호와 33호도 백령도 인근에서 홍어잡이를 하다가 북한 해군의 함포 사격을 받고 끌려간 것으로 전해졌다.

박양곤씨는 형을 만난 자리에서 "너무너무 고맙다"며 격해진 감정에 말을 잇지 못했다. 박양곤씨 가족은 박양수씨가 납북된 후 생계에 큰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동생 박양곤씨는 사망한 양친의 묘소 사진과 가족사진 등을 전달하며 계속해서 울먹였다.

최선득씨는 이날 동생 최영철씨를 만나 남쪽의 두 형과 세 여동생 및 조카의 소식을 전했고 최영철씨는 북한에서 결혼한 부인 박순화(60)씨를 형에게 소개하며 손수건을 적셨다. 최선득씨는 이날 둘째 형인 영득(72)씨의 장남인 조카 용성(43)씨가 지난해 추석에 쓴 편지를 전달했다. 전시납북자로 인정된 최종석(93)씨와 최흥식(87)씨도 이번 상봉대상에 포함됐으나 모두 사망, 각각 남쪽의 딸 최남순(65)씨와 아들 최병관(68)씨가 북쪽의 이복형제와 만나 아버지의 생전 모습을 전해들었다.

한편 우리 측 이산가족들이 묵을 숙소인 외금강 호텔은 건물 외양 곳곳의 페인트칠이 벗겨졌지만 내부 상태는 양호한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 정부가 특히 신경 썼던 난방기 또한 문제없이 작동해 고령인 이산가족들이 상봉으로 들뜬 첫날밤을 편안하게 맞았다는 후문이다.

/금강산=공동취재단·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