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지음, '그대의 차가운 손'삶은 역시 상처 투성이다. '검은 사슴'(1998) 이후 두 번째 장편소설 '그대의 차가운 손'을 낸 여성작가 한강의 시선은 이번에도 어둡고 싸늘하다.
이 소설에는 주인공인 조각가 장운형, 비만의 여대생 L, 인테리어 디자이너 E 등이 등장한다. 한결같이 삶의 상처를 간직한 인물들이다.
장운형은 어렸을 때부터 냉소적인 어머니와 빗나간 삼촌의 영향으로 겉과 속이 다르게 살아가는 인생을 실감하면서 조각가가 됐으며, 비만의 여대생 L은 의붓아버지에게 강간당한 기억과 더불어 살을 빼려는 집착에 사로잡혀 있다.
어린시절 육손이로 놀림받았던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E는 수술을 받아 손은 정상이지만, 성격은 타인이 다가서기 힘들 만큼 차갑다.
소설은 액자구조를 띤다. 나(H)는 연극을 보러 갔다가 알게 된 조각가 장운형의 작품에 깊은 인상을 받고, 우연한 자리에서 그가 남긴 노트를 읽게 된다. 그러니까 '나'가 액자 밖 이야기를 구성하고, 장운형의 노트가 액자 속 이야기를 이룬다.
소설의 중심이야기는 장운형이 화자로 등장하는 노트 속 기록들. 장운형은 '라이프캐스팅'(인체를 직접 석고로 떠서 작품을 만드는 것)이라는 독특한 방식으로 작품을 만드는 조각가이다.
그는 L이라는 비만의 여대생에게서 아름다움을 느껴 그녀를 석고로 뜨게 되는데, 사람들에게 주목받지 못하고 뚱뚱하다고 놀림받던 L은 조각가의 관심에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그러나 살을 빼려는 집착에 사로잡힌 L은 결국 비정상적으로 변해간다.
이어 장운형은 인테리어 디자이너 E를 알게 되고, 그녀도 석고로 뜬다. 장운형은 E의 차가운 외모 뒤에 숨겨진 참모습을 발견하고, 서로에게 이끌린다. 장운형은 E와 가깝게 지내다가, 어느 날 서로의 몸을 석고로 뜨게 되면서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진다.
그리고 두 사람은 실종된다.
다시 2년후 장운형의 가족들에 의해 유작전이 열리고 나(H)는 그 곳에서 장운형과 E로 보이는 두 사람을 만나게 되지만, 그들은 이내 인파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소설에서 장운형이 두 여인을 석고 뜨는 장면은 갖가지 상처로 들씌워진 인간의 외피를 벗겨내는 과정이다. 동시에 그 내밀한 상처를 쓰다듬고 사랑하는 방식을 찾는 탐색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