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韓·中·日 바둑 영웅전]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제9보(164~192)



이제 와서 백이 64로 구차하게 연결해야 한다는 사실이 조한승의 심리에 낭패감을 심히 끼쳤던 것으로 보인다. 제자리걸음이나 다름없는 이 행마를 하는 사이에 흑은 중원 방면에 2집 정도의 이득을 챙겼다. 그 사실이 조한승의 자존심을 구겨놓았다. 그 동안 줄곧 우세를 지켜왔는데 한 순간에 바둑이 아주 미세하게 되고 말았다. 게다가 조한승은 마지막 1분초읽기에 몰려 버렸다. 계가를 정확하게 하려면 1분은 턱없이 모자라는 시간이다. 혹시 역전패를 당하는 것은 아닐까. 불안감이 엄습한다. 시간 여유만 있었더라면 조한승은 이 바둑을 놓치지 않았을 것이다. 찬찬히 계가해보면 아직도 1집반 정도는 이기는 바둑이었다. 그런데 그 계산서를 조한승은 뽑아내지 못했으니…. 백88이 놓였을 때 초읽기의 마지막 10초에 몰렸다. 계시원의 카운트 다운이 초조한 조한승을 괴롭게 몰아치는 가운데 검토실에서는 백이 확정적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조한승은 확신이 없었다. 그때 하나의 유혹이 꽃뱀처럼 그의 뇌리를 파고들었다. 흑진의 도처에 약점이 있다. 그것을 정확히 찔러가면 불계승을 거둘 수 있다. 최소한 여러 수를 놓고 따내게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 유혹을 조한승은 뿌리치지 못했다. 운명의 수순 백90이 반상에 놓였다. "아니고, 그건 1집 손해인데…." 검토실의 서봉수가 지르는 비명. 계속해서 백92가 놓였다. "아이고, 그건 2집 손해인데….(서봉수) 사이버오로에는 이성재8단의 모범답안이 올라와 있었다. 실전보의 백90으로 참고도의 백1에 두었더라면 백이 1집반 이긴다는 설명이었다. 이젠 흑2의 보강이 절대수인데 그때 3으로 하나 몰아놓고 백5로 2점을 살렸으면 더이상 변수가 없는 백승이었던 것이다. 이 수읽기를 못한 조한승이 공연히 칼을 뽑아들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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