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7/05(토) 쾌청
인제 상남 소재 방태산 (1,435m)
산행 거리: 10km
산행시간 :약 7시간
양재 (07:10) – 클린턴 휴게소 (08:25-09:00) – 미산리산행 들머리 (승두촌: 10:45) –계곡 끝 (12:05-20) – 옹달샘 (12:55) - 안부 (13:15) – 방태산 (주억봉: 15:35) – 첫 계곡물 (16:35) – 이폭,저폭, 자연 휴양림 (17:10-32)- 마당바위 – 주차장 (17:40) – 출발 (18:10) – 양평 백운봉 휴게소 (20:15-25) – 집 (22:10)
가을 하늘 같은 오늘
집을 나서는데 (06:30) 간간이 새털 구름에 하늘이 높고 푸르다. 물론 전날 서울이 맑다며 오늘 조간신문들이 사진을 내보냈다. 계절을 건너 뛰려고 그러나 싶다. 그럴리야 있겠냐마는 하늘이 맑아 산에 오르면 조망이 좋겠다는 쪽으로 생각이 옮겨간다.
서초구청 앞에 서 있으니 모 산악회는 지리산 반야봉을 향해 버스를 두 대나 몰고 간다. 예정대로 7:10분이 되니 월산악회 버스도 온다. 45인 승이 빈자리가 하나 없다. 가이드 한분은 제일 앞 통로에 앉았으니까. 나의 경우처럼 많이 들어본 산이 아니라서 산행하는 분들의 구미를 땡긴 것인가.
강원도 인제군에서 제일 개발이 덜된 상남면에 있는 방태산 (芳台山:1,435m). 기린면에 위치한 하산길인 북쪽의 적가리골만 해도 지난 1997년 산림청이 ``방태산 자연 휴양림``을 개장하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많아졌단다.
복정에서 구리-판교 고속국도를 타고 가다 하남시로 빠져 나와 팔당대교를 건너 양평쪽으로 달린다. 터널 두개를 연이어 지나 양수리를 넘어가니 강과 산에 안개가 자욱이 몰려 온다. (7:50) 안개가 끼면 맑다고 하지 않았나. 이래 저래 오늘은 일진이 좋을 듯 싶다. 거의 강이 끝나는 양평까지 안개가 끼어있다.
이젠 4차선으로 된 지 꽤 오래된 44번 국도인 양평-홍천대로로 바꿔 타더니 이내 양평군 청운면 삼성리 소재 조그만 ``클린턴 휴게소``에 차를 댄다. (8:25-9:00) 서두르다 아침 거르신 분들 식사하란다. 오늘은 나도 그냥 집을 나서 새우우동(3,500원) 하나 시켜 배를 채웠다. 다시 버스는 막힘 없이 시원하게 달린다.
눈에 들어오는 7월 꽃들
도로변 집의 울안 화단에 빨간 접시꽃이 눈에 또렷이 띈다. 마치 마술사가 막대 하나에 붉은 접시를 여러 개 옆으로 죽 매달고 돌리는 것 같다. 아니면 파라볼라 안테나를 여러 개 붙들고 있는 송신탑이다. 어릴 때 흰꽃과 함께 많이 봤던 약초인 접시꽃… 나무를 칭칭 감고 올라선 나팔꽃 모양의 주황색꽃을 피운 능소화도 눈에 들어온다. 화사한 분홍의 부채살 같은 꽃을 숱하게 이고 있는 콩과의 교목인 자귀나무도 보인다. 우아해서 영어로도 비단이라는 말을 넣어 silk tree.
철정 검문소에서 451번 지방도로로 바꿔 내촌면으로 들어오더니 아홉고개를 지나다 물을 보충하겠다고 기사님이 잠시 차를 세운다. 상남에서 우체국을 끼고 우회전 상남초등학교(10:18)를 좌로 하고 칡받이 고개를 넘어가니 산이 깊어진다.
길가 자투리땅이나 산자락 크고 작은 나무들이 다한 곳에는 들국화의 대명사격인 망초가 메밀꽃처럼 하얗게 피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애기똥풀이 노란 융단을 깔아 놓았던 것과 대조를 이룬다. 이들도 지나는 절기의 변화를 말해 준다.
초복(7/16일)이 열 하루 남은 걸 봐도 성하(盛夏)의 길목이다. 밤꽃의 허연색만을 뺀다면 온 산과 들판은 진초록이다. 초목들이 저마다 광합성 공장을 풀 가동하고 있다는 얘기다. 큰키나무들은 햇빛을 많이 받으려 피울 수 있는 대로 최대한 잎을 피워 놓았고, 그 그늘 아래 있는 관목과 풀들도 필사적으로 얼굴을 내민다.
물이 많이 흐르는 소개인동(小開仁洞)계곡이 왼쪽으로 나타나고 방가로들이 여름 손님 맞을 채비를 한다. 별장도 보인다. 얼마 전만 해도 비포장 도로였던 것 같다. 양쪽으로는 산이 숨막히게 높이 서 있다. 약수 산장을 좀 남겨 놓고 버스하나 지나갈 정도의 시멘트 다리를 건넌다. 만든지 얼마 안 되는 것 같다. 상남면 미산리. 여름 휴가 때나 지나는 길에 들르라고 여러가지 플래카드를 정면으로 산아래에 걸쳐놓은 걸 보니 이 곳 주민들도 휴가객 유치에 눈을 떴나 싶다. 비포장길을 조금 가다 미산리 승두촌의 방태산 들머리에 하차하니 10:30.
발길이 적은 미산리 방태산 들머리
길이 인공으로 자른 돌로 다져져 있다. 오를 산능선 사이로 서울에서 봤던 것과 비슷한 새털 구름이 조금 걸터 앉아 있고 그 옆쪽으로는 비행기가 낸 허연 자국이 장난한 것처럼 보인다. 밤꽃냄새가 역겹게 나고, 하얀 감자꽃도 보인다. 진회색의 보호색을 해 두꺼비 같기도 하고 개구리 같기도 한 게 발아래서 뛴다.
10:45 입구를 들어서기도 전 방향을 두 번 수정, 초장에 계곡 물을 건너 숲속으로 들어갔다. 엊그제 비가내려 수량이 많아 마치 팔당댐 방류하는 것 같은 소리라면 우스울까. 습기가 많고 흙과 낙엽은 흠뻑 젖어있다. 산악회 리본들이 나뭇가지에 걸려있는 걸 보면 들머리 찾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이고 개인적으로는 더 더욱 그럴 것 같다. 계곡을 다시 한번 건너더니 선두가 방향을 잘 못 잡아 다시 내려오는 일이 발생했다. 길을 잘 못 들어서면 길이 없어 위험에 처 할 것 같은 산이다.
계곡을 따라 한 사람밖에 지나갈 수 없는 등산길을 줄지어 오른다. 물소리도 시원하고 활엽수가 그늘을 만들어 괜찮을 듯 싶은데, 습도가 높아 땀이 많지 않은 나도 줄줄 흐른다.
양치류와 이끼류의 서식처
습도가 높아 고비등 양치류와 이끼류가 살아가기에 그만인 모양인지 무성하다. 고비는 줄기가 원추형 바구니를 하고 있어 뭔가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던지면 받을 태세고, 바위와 나무에 웃자란(?) 이끼는 상암 경기장에 깔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산딸기, 뱀딸기 끝물이 조금씩 자주 눈에 띈다. 침엽수는 눈 씻고 볼래야 찾아보기 힘들고 모두가 활엽수다. 이 산에서는 소나무가 포기한지 오래인 것 같다. 그래서 터널처럼 된 곳도 많다. 박쥐가 날개를 펼친 것 같다고 해서 이름붙은 박쥐나무도 눈에 들어온다. 이름 모를 야생초가 빼곡하다. 10여 년 이상 된 나무의 시체들이 즐비하고, 어떤 녀석들은 가로질러 누워 있어 가는 길을 방해 한다.
계곡물을 12번 가로 질러
보폭이 맞는 사람들끼리 삼삼 오오 그룹을 이루며 오른다. 수많은 종류의 나무와 풀들이 얼굴을 내밀며 알고 지내자고 하지만 대부분 초면같다. 옛 양반이 애첩 애지중지하며 떠나 보내지 못하듯 계곡을 떠나지 못하고 12번을 가로지르다 물가에 자리를 잡았다. 이제는 한번 쉬어 가야겠다. 12시 10분. 계곡도 1시간 25분을 놀아줬으니 여기서 헤어지자는 인사를 할 요량이다. 계곡물 한 모금 마시고 미끈미끈한 얼굴에 물을 끼얹었다. 시원하다. 아주머니 한 분과 다른 어르신내 한 분이 같이 했다. 아주머니께서 참외를 하나 깎고 얼음물에 커피까지 타신다. 그 사이 일행 여럿이 올라 온다.
12/20 다시 일어 섰다. 이제는 한번에 능선까지 가야 할 것 같다. 역시 계곡 물소리는 멀어지면서 깔딱 고개마냥 가파르다. 그래도 여지껏 경사가 급하지 않아 내 다리도 준비 운동을 끝내 논 셈이니 크게 어렵지 않을 것 같다. 육산이라지만 물을 머금어 나무뿌리와 돌은 곳곳이 복병이다.
강원도가 고향이라는 한 아주머니가 앞을 서며 산나물을 가려낸다. 그러나 알아채도 반찬으로 먹기에는 너무 쇠었단다. 봄이면 산나물 채취꾼, 여름이면 야초채취꾼, 가을이면 단풍구경을 위해 오는 산이 방태산이란다. 그러나 나는 꽃구경만 하면 된다. 그래서 봄이 제 격인데 초등길에 좀 늦은 철이다.
가파른 길을 오르다보니 젊은 분이 카메라 삼각대를 짊어지고 따라붙는다. 삼각대를 가지고 다니면 산의 나무나 야생화에 관심이 있다는 얘기. ``아시는 나무나 풀이 있으며 말해 주세요,`` 자연적으로 나오는 나의 말이다. 친해지는 첩경이 이름을 아는 것부터라는 걸 터득한 지 좀 됐다.
오솔길 등산로에 조금 비켜서 있는 동자꽃을 찾아낸다. 무릎 높이에 두개의 줄기가 주황색의 꽃을 하나씩 받치고 있다. 세파에 시달리고 난 수수한 40대 여인의 모습이라고나 할까. 지성미도 겸비한 듯 하다. 그러나 디카를 꺼내는 게 귀찮다. 조금 가더니 이번에는 초롱꽃과의 모시대를 찾아낸다. 내보기에는 같은 과의 잔대같다. 보라색의 도라지꽃 비슷한 게 아래로 고개를 떨구고 있다면 쉽게 이해 할 수 있을까. 능선에 가까워지자 큰키나무들이 풀과 관목한테 자리를 양보한다. 물론 시야가 넓어진다. 그러나 이정표가 없어 위치는 모른다. 삼각대를 가진 분이 사진에서 본 것 같다며 왼쪽 바로 옆이 깃대봉 같단다. 그러나 오직 외길 따라 왔는데 그렇게 왼쪽으로 크게 벗어날 리가 없다며 다들 의아스러워 한다. 옹달샘이 바위 아래에 있고 손잡이가 긴 플라스틱 바가지가 하나 있어 한 모금씩 마시고, 나는 생수병에 물을 갈아 채웠다. 물이 부족한 듯 했었다. 12:55분.
박새 옆에 멧돼지 놀던 흔적이
초원지대에 올라가는 일행들이 보인다. 복판에 들어서더니 삼각대를 세우느라 바쁘다. 개당귀가 마치 뱀이 개구리 삼킨 듯 대 마디에 불둑불둑하다. 잎을 내기 위한 것 아니면 꽃을 내기 위한 것이겠지. 내가 알고 있던 것과 다른 누런잎의 야생초 한 종류가 너무나 눈에 많이 띈다. 나리과의 박새. 유일하게 광합성 공장 가동을 끝내고 갈색의 빛을 하며 진초록을 훼방 논다. 금년 농사를 다 지었다니 할 말은 없다. 이게 사람에 이롭다면 아마도 벌써 없어졌을 텐데 독이 있어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아 지천으로 깔려 있다. 지리산, 설악산, 덕유산 등 1,000미터가 넘는 산에는 틀림없이 군락을 이루는 야생초다. 그런데 옆에 멧돼지 자국이란다. 이곳 저곳을 파 제겼다. 멧돼지도 박새는 본능적으로 피했을 것 같다.
설악산 대청봉이 눈안에
13:15 1,300미터가 넘는 능선 안부에 이르니 열 댓분의 일행이 둘 셋씩 여기 저기 풀밭에 모여 앉아 허기를 때운다. 남과북이 시원하게 뻥 뚫려있다. 북으로 제일 뒤에 설악산 대청, 중청 소청이, 그 앞에는 점봉산이, 대청동쪽으로는 운해가 동해안까지 걸려있다. 발아래 대골에는 작년 루사가 할퀴고 간 흔적이 허옇게 나 있다. 방태산의 주입산로가 아니니 다행이지 이곳으로 내려간다면 여간 고역이 아닐지 싶다.
서쪽에는 배달은석봉 (1,415m)과 깃대봉(1,435m)이 방태산의 연봉이다. 동쪽으로는 주억봉(방태산의 주봉)과 구룡덕봉 (1,388m), 그 남쪽으로 연이어 왼쪽부터 개인산 (開仁山: 1,341m), 침석봉 (1,320m), 숫돌봉(1,104m)이 둘러져 있어 개인(開仁)계곡을 만들어 남쪽에서 내린천에 물을 보탠다. 산들이 육산인데다 능선이 부드러워 부담이 없다. 홍천에서 인제 경유 속초 가는 길과 바로 양양가는 길 사이 어물쩡한 위치에 있고 육산이라 많이 찾지 않았던 산 같은데 휴양림이 생기면서 이름이 알려지고 인적을 피해볼려는 등산객들로 최근 발길이 잦아진 산이 방태산이란다.
오늘같이 맑은 날이 1년에 한 달 정도. 그러니까 한 달에 3일이 채 안된다니 아침 예감대로 일진이 매우 좋다는 얘기다. 그런데 어느 정도 마음에 담아갈 것인가는 별개 문제다.
삼각대를 짊어진 분을 따라 바위 많은 동쪽 산등성이 쪽으로 잠깐 가다보니, 고사목이 남쪽 아래로 약간 펼쳐진다. 고사목은 주목이 주이고 참나무인 신갈도 좀 보인다. 이쁘게 바위에 붙어있는 풀은 부처손이란다. 계속 능선을 타는데 큰키의 활엽수가 나오다 눈아래의 관목들이 잠깐씩 교대한다. 잎넓은 박새는 계속 눈을 피곤하게 한다. 가끔 남쪽이 탁 트이는 곳도 나와 부드러운 능선을 보게 한다.
그런데 어느 곳은 길을 잃을 정도로 나무들이 길을 덮는다. 반바지에 반팔을 한 부부가 영 맘에 걸린다. 특히 아주머니 다리나 팔에 가시가 있는 나무가 스치는 경우에는 상처날게 불 보듯 훤하다. 그래서 산은 긴팔 긴소매를 입는게 좋은 것 같다. 더우면 소매나 바지를 걷으면 되지만 짧으면 내릴 수 없는 게 아닌가. 된장 잠자리와 흰 나비들이 이 높은 곳까지 올라와 논다.
15:35 그러면서 두 번을 쉬고 안부에서부터 걷기를 2시간 10분. 조금 전 쉬다 일어서서 발을 몇 발작 띠니 방태산 주봉인 주억봉 표지판이 있다. 처음 보는 이정표다. 평평한 흙에 서쪽은 가려졌고 삼면이 조망된다. 증명용으로 디카에 한 컷. 동쪽으로 삼거리 0.5km, 더가서 있는 구룡덕봉 1.5km, 북쪽 종착지인 적가리골끝 방동리까지 3.6km.
방태산의 의미는
그런데 주억봉의 의미는 전혀 모르겠다. 어떤 이들의 말처럼 적가리계곡을 둘러싼 산세가 주걱같아 ``주걱봉``이 더 그럴 듯하다. 그리고 산이름이 나왔으니 한번 더 짚어보자. 어디서 들어 봄직한데도 방태(芳台)라는 이름은 의미를 알 수 없다. 이름에 의미 없는 게 어디 있나. 나는 `꽃다울 방`자이기에 방초 즉 야생화가 많다는 의미로 보고 태(台)는 `별 이름`이나 `높은 자리(벼슬)`의 의미가 있어 ``높은 곳에 야생화가 많은 산``이라고 방태산을 풀이하고 싶다. 사실 아까 카메라를 짊어진 젊은 일행이 이곳에는 활엽수 그늘에다 습기가 많아 야생화와 약초가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나니 더욱 이 정의를 내리는데 확신이 섰다. 백합과의 얼레지를 비롯 별꽃(흰색), 노랑제비꽃(노란색), 동의나물(노란색), 괴불주머니(노랑색), 현호색(보라색)등 많은 야생화를 즐겼다는 얘기를 작년 봄에 들은 적이 있다. 지금은 전혀 다른 계절이지만…
하산길의 급경사
15:55 이제부터는 하산길. 구룡덕봉까지 갈려고 일찍 튄 분들은 벌써 그 봉을 섭렵하고 한참을 내려갔을 것이다. 울창한 활엽수 아래로 스틱만 잘 짚고 내려가면 된다. 올라올 때와는 달리 흙으로 되어있어 푹신푹신하다. 조금 내려 가다보니 가파라진다. 600m가 넘는 산이면 보통 가파른 데를 깔딱고개라는 이름을 붙이는데 올라올 때도 한번 그랬던 것처럼 여기가 그렇다. 물을 많이 머금어 조금만 헛눈을 팔면 넘어지게 돼있다. 나도 여러 차례 넘어질 뻔 했는데 스틱 덕분에 주저앉지는 않았다. 그렇게 내려오기를 40여분, (16:35) 처음 물 있는 계곡이 나온다. 여기까지가 지당골. ``지당`` 역시 의미를 모르겠다. 산신령의 정기를 받는다면 당집이나 서낭당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흔적이 전혀 없다. 세수를 한번 하고 다시 일어섰다. 이제부터는 경사가 완만하고 이정표도 간간이 있다. 적가리골.
이번에도 한 아주머니가 등산 예찬론을 펴신다. 왜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좋은 등산을 안하는지 모르겠단다. 그리고 산에 오면 왜 그렇게 빨리 가려는지도 모르겠단다. 가슴에 와 닿지 않으면 아무리 권해도 듣지 않는다. 나도 2-3년 전 만해도 왜 산에 가는지를 몰랐다.
이 아주머니는 아들 둘에 딸 하나인데 99년 다 여의고 나서 집이 텅비는 바람에 우울증에 시달리다 선배언니가 산을 권해 서울주변 산을 찾기 시작하면서 그런 증세가 없어졌단다. 당연히 여러 번 다니다 보면 안가본 산을 찾게 되고 이제는 무박도 하며 멀리 뛰신단다. 자녀들 일이 다 끝나 건강하기만 하면 된단다. 보통은 그 연세라면 자식들의 대입, 취직, 결혼 문제 때문에 아플새가 없다. 하여튼 산에 다니다 보면, 대부분 사연들이 있다. 일행 중 70이 넘어 보이는 분들이 꽤 되던데 그분들도 분명 이런 계기가 있었을 것이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오니 심심치 않다. 이 계곡도 8번이나 물을 건너는데 대부분 간단히 통나무 한 두어개로 다리를 만들어 놓았다. 산림청에서 자연 휴양림을 만들다 보니 걸쳐 놓은 것 같다. 그래도 정감 있어 좋다. 한참을 내려오다 보니 모처럼 침엽수인 전나무가 하늘을 찌를 듯이 서 있는 군락도 나온다. 내려오면서 계곡에는 물이 많아지면서 넓어진다. 물내리는 계곡을 배경으로 사진도 한 컷. (17:10) 4:30분 하산 시각은 지난지 오래다. 그 사이 초롱꽃도 만났고 끝물인 산목련도 보았다. 그래도 울창한 활엽수림이 압권인 듯 싶다.
적가리 계곡의 `이폭 저폭`
`자연 휴양림`에 들어서니 큰 폭포가 하나 나온다. 아래의 ``저폭포 (3m)``와 짝을 이루는 ``이폭포(10m)`` 가 물발을 드리운 것 같다. 카메라를 다시 한번 꺼냈다. 혹시나 제일 늦나 싶어 서둘렀지만 놀다 가고 싶은 맘 꿀떡같다. 이 적가리 계곡의 하일라이트는 이 양폭포와 계곡이 마당바위로 되어있고 그 밑에 소가 있는 마당소. 이 중간에 ``자연 휴양림`` 숙소가 자리하고있다. 곳곳에 쉼터 정자가 있는데 고기를 굽느라 피운 연기가 자욱하니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그 옛날 ``물, 불, 바람 즉 흉년, 전염병, 전쟁을 피할 수 있는 곳으로 내우외환이 끊이지 않았던 불행한 시대에 많은 민초들을 보듬어 주었던 곳``이 이 산이었단다. 이폭포의 시원한 물소리와 마당바위의 미끄러지는 물을 보며 주차장에 오니 17:40분. 10km 산행 코스를 7시간가량 걸었다는 얘기다. 일찍 내려오신 분들은 땀을 씻어내고 소주에 식사를 마쳤다. 부연한 물김치에 새고롬한 총각김치, 실멸치조림, 마늘쫑에 밥이 얼마나 맛이 있겠나. 모두가 비슷한 표정들이다. 나는 점심을 먹지 않아 더욱 그렇다.
제일 후미로 연세가 많으신 몇 분이 6시쯤 내려오시면서 미안한 표정이다.
여성 가이드 말은 보통 선두와 후미가 2시간정도 차이라니 선두가 4시 조금 못미쳐 도착했다니 후미가 제시간에 오셨다는 얘기다. 구룡덕봉까지 다녀 오신분도 8명이나 됐다고 한다.
18:10 차가 출발하는데 조각 먹구름이 해를 가린다. 이제는 비구름이 와도 상관 없다. 계곡물은 쉼없이 흐르고, 여기도 밤나무는 허옇게 꽃을 피웠다. 옆에 앉아 계신분은 산이 깊어 좀 늦은 것 같다며 서울 근교는 3주전에 피었다고 덧붙인다. 방동리를 빠져나와 서울로 향했다. 양평 백운봉 휴게소에 와(20:15-25) 하늘을 보니 초승달이 머리위 남쪽에 떠 있다.
에필로그
우선 방동리와 미산리 들머리 모두 초입이 완만해 초행자들에게는 진을 안 빼 좋은 것 같다. 그런데 계곡을 따라가야 하니 우기에는 위험해 보인다. 오를 때 12번 내려 올 때 8번 계곡물을 건넜으니까. 비가 많이 와 쏟아 내리면 갇히기 싶상인 것 같다. 야생화가 많다니 이런 위험성과 함께 생각하면 역시 봄 산행이 제격인 것 같다. 등하산길은 잘 잡은 것 같다. 활엽수림이 빽빽했던 것도 역시 좋았다. 산림청의 `자연 휴양림`이 있는 방동리쪽이 계곡도 훨씬 좋아 발전 가능성이 많고 미산리쪽은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 그래서 정상 갈 때까지 이정표 하나 안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많은 이름들이 생소하고 의미가 안들어온다. 방태산 이름 자체도 그렇거니와, 배달은석봉, 구룡덕봉, 개인산, 침석봉, 지당골, 적가리골 등등.
다음에는 봄에 꼭 한번 찾아봐야겠다. 즐거운 산행이 되어 대장님, 가이드분 및 동행한 분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드린다.
<채희묵 chaehmook@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