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빚탕감 가장, 혈세 수백억 빼돌려

현대차 수사 금융권으로 '불똥'<br>흑자계열사에도 채무 면제 '도덕적 해이' 심각<br>산은·캠코수사 임박…무더기 사법처리 가능성


“IMF 이후 숱한 공적자금 비리를 수사해왔지만 이렇게 교묘하면서 부도덕한 경우는 처음이다” “수사 검사들이 경악과 함께 우울감마저 느끼고 있다”(채동욱 대검 수사기획관) 수백억원의 기아차 계열사 부채탕감을 매개로 한 금융계와 감독당국의 비리를 바라보는 검찰의 시선이 싸늘하다. ◇합법 가장해 국민혈세 빼돌려=검찰은 이번 사건을 IMF 이후 부실 금융기관에 수십조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되는 과정에서 감독당국-국책 및 시중은행-대기업이 공모해 부채탕감이라는 허울을 내세워 수백억원의 국민 혈세를 빼먹은 사건으로 규정하고 관련자들을 엄단한다는 방침이다. 14일 긴급체포된 박상배 전 산업은행 총재는 금융계와 감독당국의 공모 수사에 대한 첫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채 수사기획관은 이날 산업은행의 결백 주장에 대해 “산업은행은 할 말이 없는 사건이다. 앞으로 금융계 등 관련 인사를 차례차례 소환, 단계별로 처벌해나가겠다”고 밝혀 이미 단서나 혐의 물증을 확보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검찰은 먼저 자산관리공사(캠코)와 산업은행 등 금융기관이 기아차 계열사 부채를 서로 사고팔면서 기업채무를 탕감해주고 결국 구조조정회사에 헐값에 넘기는 방식으로 혈세를 낭비했다고 보고 있다. 이 과정에서 현대차 비자금이 로비스트 김동훈(구속)씨를 통해 금융계와 캠코 인사에 흘러들어갔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흑자기업에 채무탕감=산업은행과 캠코는 현대ㆍ기아차그룹 계열사인 위아(옛 기아중공업)와 메티아(옛 아주금속공업)가 경영정상화 단계에 진입한 후에도 채무를 탕감해준 것으로 드러났다. 금융권에 따르면 위아는 97년 기아자동차그룹과 함께 부도가 났지만 99년 현대ㆍ기아자동차그룹으로 편입돼 부실채권에 대한 회수가 가능한 상황이었다. 위아의 2001년 순이익은 611억9,700만원이었으며 2002년 역시 672억8,600만원의 순익을 기록했다. 산업은행은 97년과 98년 두차례에 걸쳐 보유 중이던 위아의 부실채권 1,425억원(원금기준)을 캠코에 넘겼으며 위아는 2001년까지 868억원을 상환했으나 이후 흑자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채무변제를 이행하지 않았다. 이에 캠코는 산업은행에 채무변제가 이뤄지지 않은 위아의 부실채권 557억원을 계약조건에 따라 환매했다. 따라서 위아가 2001년 흑자를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캠코에 채무변제를 하지 않은 것은 채무탕감을 위한 의도적 행위였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산업은행의 한 관계자는 “캠코로부터 부실채권 557억원을 환매해온 후 이를 2002년에 구조조정회사인 신클레어에 795억원에 매각해 원금 이상을 회수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검찰의 수사가 압박해오자 말을 바꿔 “557억원에 환매해온 부실채권에 연체이자가 440억원에 달해 997억원에 매각해야 손실이 발생하지 않지만 이를 795억원에 매각, 202억원의 채무탕감이 이뤄진 셈”이라고 설명했다. 메티아 역시 2001년 현대ㆍ기아차그룹에 편입된 후 경영정상화가 이뤄졌지만 산업은행과 캠코는 125억원의 부실채권을 2001년 말 88억원에 매각해 사실상 37억원의 채무를 탕감해주기도 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부실기업이 흑자로 전환됐을 경우 부실채권 회수를 기업에 요구하는 것이 관행”이라며 “산업은행과 캠코가 이익을 내고 있는 기업에 채무변제 요구는커녕 복잡한 경로를 거쳐 채무를 탕감해준 것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산업은행으로부터 위아의 부실채권을 인수한 캠코가 1,000억원 규모의 자산유동화증권(ABS)을 발행했지만 이를 2002년 초 해체해 정상적인 방법을 통한 자금 회수를 포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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