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6월4일] <1413>덩케르크 철수작전

풍전등화. 영국ㆍ프랑스 연합군 40만명이 프랑스 북부 소도시 덩케르크에 갇혔다. 침공 보름 만에 프랑스를 휩쓴 80만 독일군에게 패할 게 뻔한 상황. 독일이 잠시 공세를 멈추자 영국에서는 화평론이 일었다. 영국의 전시내각 총리에 갓 지명된 윈스턴 처칠은 ‘항전과 철수’라는 단안을 내렸다. 철수작전이 시작된 1940년 5월27일, 배에 오른 병사는 불과 7,669명. 독일의 공습과 포격이 심해져 철수 자체가 불가능해 보였지만 기적이 일어났다. 이튿날 1만7,804명으로 늘어난 하루 철수 병력은 6월 초 6만4,229명으로 불어났다. 결국 철수작전이 종료된 6월4일 연합군 3만명이 전사하고 3만4,000여명이 포로로 잡혔지만 33만8,226명이 영국으로 돌아왔다. 연합군 수뇌부가 생환이 가능하다고 예상했던 4만5,000여명의 7.5배가 넘는 병력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국민의 자발적 참여 덕분이다. 탈출이 시작됐다는 소식을 들은 어선 820척을 비롯해 2인승 요트까지 수많은 보트가 포화를 뚫고 덩케르크로 달려가 병사들을 실어 날랐기에 가능했다. 철수작전이 완료된 후 독일에 양보해야 한다는 여론은 자취를 감췄다. 전과로만 본다면 덩케르크 철수작전은 연합군의 처절한 패배. 간신히 사람만 빠져나왔을 뿐 연료 60만톤과 화약 7만6,000톤, 탱크 289량을 포함한 차량 6만3,897대, 기관총 1만1,000정, 대공포 1,250문, 야포 1,200문 등 막대한 장비를 잃었다. 패잔병으로 돌아온 영불연합군을 영국인들은 개선행진곡으로 맞았다. 사기가 오른 병사들은 승리의 구호를 외치고 다시금 전장에 나설 힘을 얻어 끝내 이겼다.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참여하고 서로를 감싸 안은 국민들의 단합된 힘이 패배를 승리의 원동력으로 바꾼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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