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 보이지 않는 비용

요즈음 한국 사회의 최대 경제적 화두는 ‘반기업 정서’가 아닌가 싶다. 그것의 존재 여부를 놓고 우리 사회 곳곳에서 격렬한 논쟁이 일고 있으니 말이다. 여기에는 노무현 대통령도 이미 가세했다. 물론 “그러한 정서는 국민들 사이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자체 결론으로. 하지만 그 결과에 관계없이 기업, 특히 대기업-‘재벌’-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각은 여전히 냉엄한 구석이 많다는 사실을 이번 논쟁은 새삼 확인시켜주고 있다. 그것이 ‘진정 기업을 사랑하는’ 자세에서 나온 것이든 단순히 대기업을 ‘때리고 흠집내기’위한 의도적 행위에서 비롯된 것이든 말이다. 이런 논쟁은 결국 기업들의 해외 IR 현장에서 외국 투자자들의 우려섞인 목소리가 터져나오도록 하는 등 ‘반기업 정서’로 인한 ‘보이지 않는 비용’은 엄청난 것 같다. 물론 원인제공을 한 것은 기업이라고 볼 수 있다. 정당하고 깨끗하지 못한 경영행태로 인해 사법적 판단과 여론의 질타를 피할 수 없는 문제를 낳은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몇몇 사실들이 무차별적인 기업인 소환과 비판을 양산해낸 정치권의 다소 포퓰리즘적이고 사려깊지 못한 행태, 기업활동을 제약하는 내용으로 추진 중인 일부 법안 등에 대한 설득논리로 받아들이기에는 크게 부족한 듯하다. 그렇기에 “반기업 정서는 없다”는 정부 및 여당과 여러 단체 등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참으로 힘든 이유다. 그런데 요 며칠 사이 이러한 논리가 굉장히 주눅들고 있다. 국내 대표적 벤처 1세대 기업인 터보테크에 이어 로커스마저 분식회계를 저질렀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다. 대기업과는 달리 투명하고 반듯한 기업의 모델로 평가받아온 벤처, 특히 이들 유명기업이 국민들의 기대를 철저하게 배반했기 때문이다. 이런 사태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어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이미 책임을 지고 백의종군을 선언한 터보테크의 장흥순씨는 지난 99년 스위스 세계경제포럼(WEF)에서 ‘차세대 지도자 100인’에 선정됐던 인물이다. 김형순 로커스 사장 역시 한때 꿈꾸던 영화감독의 길을 접고 벤처시장에 뛰어들어 ‘성공신화’를 이뤄낸 한국경제의 자랑이었다. 그들은 각종 세미나ㆍ행사에서 한결같이 기업인의 자질로 ‘책임감과 신뢰’를 강조해왔다. 그들은 또 대기업과 중소기업, 부자와 서민 등으로 양분화되고 고착화되고 있는 한국 사회구조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희망의 상징성을 갖고 있었다는 점에서 더욱 높은 가치를 인정받아왔다. 때문에 이번 사태는 국민들에게 더 커다란 충격과 배신감을 느끼게 한 것이다. ”대표적인 벤처기업마저 저러한데 어떤 기업인들 깨끗하겠는가”라는 국민들의 탄식과 비난은 어느덧 ‘반기업 정서’을 심화시키고 있는 듯하다. 또 갈수록 양극화되고 있는 경제 구조 속에 고유가와 고금리, 늘어나는 세금 등으로 누구보다 어깨가 축 처져가고 있는 서민들의 가슴에 허탈감과 분노를 낳는 결과로도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모든 문제를 그들, 기업인 탓으로만 돌려서는 안된다는 지적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기업이 정도를 걸을 수 있는 사회ㆍ경제적 구조의 틀을 시급히 갖춰놓아야 한다는 것. 내년부터 정부가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에 대한 회계관리규정을 대폭 강화할 예정이어서 그나마 안심이다. 문제는 늘 그렇듯이 제도 운영과 감시를 얼마나 효율적이고 철저하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제2의 터보테크ㆍ로커스 사태가 앞으로 빚어지지 않도록 정치ㆍ경제인 모두가 지혜를 모으는 것이 비생산적인 ‘반기업 정서’ 논쟁을 하루속히 가라앉힐 수 있는 하나의 지름길이다. 그리고 기업인들, 특히 벤처기업들은 창업초기의 열정과 순수성을 끊임없이 확인하면서 스스로를 점검하는 자세가 절실히 요구된다. 그래야 우리 산업구조, 나아가 국가 경쟁력에 미래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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