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출간된 그린스펀의 회고록을 탐독 중이다. 작년 초까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을 맡아 경제 대통령이라 불리던 그다. 늘 모호하고 다양한 해석을 낳는 언술로 유명했지만 퇴임 후의 글은 매우 명료하게 과거를 짚어가고 있어 의외였다. 함께 일한 대통령과 관료에 대한 가차없는 평가도 그렇거니와 선택의 순간마다 맞닥뜨린 여러 문제들에 대해 가감없이 풀어내고 있다. 마치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듯이.
세계 경제의 조타수의 눈을 통해 한 시대를 들여다보는 것은 매우 값진 체험이다. 건조한 역사적 사실들이 그의 손을 거쳐 역동적인 현실로 새롭게 다가온다. 그린스펀은 ‘역사기록의 책임감’으로 이 작업을 했다고 한다.
중요한 의사결정에 참여한 공직자가 기록에 대한 의무감을 갖는다는 것은 매우 훌륭한 전통이다. 관료들이 정보를 독점하려 든다면 그들의 결정에 영향 받는 일반시민들은 주권자의 지위를 상실하게 된다. 흔히들 미국은 소수 엘리트가 지배한다고 하지만 자신의 행동을 기록하여 전수하는 전통이 그 사회를 지탱하는 힘일 성싶다.
그린스펀이 집권당의 교체에도 20여년간 변함없이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비결은 그의 비정치성에 있었다. 닉슨 캠프에 몸담으며 정치와 인연을 맺었지만 정치적 외압으로부터 시장경제를 지키는 것을 사명으로 삼았다.
정치적 독립성이 보장된 연준 의장이라는 직책 자체가 그의 신념과 잘 맞는다. 몇몇 호의적인 평가를 내리는 경우도 있지만 그가 보기에 대부분의 정치인(주로 의원들)은 표를 좇아 시장 왜곡을 서슴지 않는 부류이다. 그래서 정치인이 이 책을 읽는 것은 다소 고통스런 일이다.
그린스펀의 지적은 상당부분 현실에 부합한다. 득표를 위해 인플레를 불사하며 경기부양을 조장해온 많은 사례를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하지만 그 현실을 용인하고 정치를 경제로부터 유리시키는 게 정답일까.
경제를 단순화시켜 사람들의 먹고 사는 문제라 정의해보자.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표가 경제에 관여하지 않는다면 자기를 뽑아준 국민에 대한 직무유기일 수도 있다. “국민은 투표할 때만 자유롭고 곧이어 노예상태로 되돌아간다”며 민주주의를 조롱한 루소가 떠오른다. 선출된 대통령 따로, (그린스펀 같은) 경제 대통령 따로라면 말이다. 유능하고 책임성있는 정치를 만드는 게 올바른 해답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