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정관계 로비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전ㆍ현직 국회의원에 이어 전직 국회의장,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이 부인인 권양숙 여사가 박 회장에게서 돈을 건네받았다고 시인하고 검찰 조사에 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힘에 따라 검찰 수사는 향후 열흘간 최고조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노 전 대통령 직접 겨냥=검찰은 7일 노 전 대통령의 ‘집사’인 정상문(63) 전 대통령 총무비서관을 체포하고 후원자인 강금원(57) 창신섬유 회장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는 노 전 대통령을 직접 수사하기 위한 수순으로 풀이된다. 정 전 비서관은 참여정부 총무비서관 재직 중인 지난 2005∼2006년 박 회장에게서 수억원을 건네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정 전 비서관은 또 2007년 12월 노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 연철호씨의 부탁으로 박 회장 측에 전화해 만나줄 것을 부탁했으며 앞서 같은 해 8월에는 박 회장, 강 회장과 ‘3자 회동’을 갖고 노 전 대통령의 퇴임 후 활동을 준비하기 위한 재단 설립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전지검 특수부 역시 전날 강 회장을 횡령 및 조세포탈 혐의로 불러 17시간 동안 조사한 후 이날 오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강 회장은 노 전 대통령의 봉하마을 개발을 위한 ㈜봉화 설립자금으로 70억원을 제공했으며 이 돈은 자신의 회삿돈에서 몰래 빼낸 것으로 검찰은 파악하고 있다. 강 회장 구속 여부는 9일 오후 결정된다.
검찰은 또 박 회장에게서 돈을 받은 혐의로 김원기 전 국회의장을 소환조사하고 박관용 전 국회의장도 전날에 이어 재소환했다.
◇홍콩 800억 APC 계좌 뇌관 될 수도=검찰은 박 회장의 비자금 창구로 알려진 홍콩 APC 계좌도 노 전 대통령의 금품수수 여부 및 정관계 로비 의혹의 전모를 파헤칠 핵심 단서로 보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인 연씨가 박 회장에게서 받은 500만달러가 이 계좌에서 나왔다는 의혹이 제기돼왔기 때문이다. 검찰은 전날 홍콩 사법당국으로부터 APC 계좌자료를 제출 받아 분석작업을 벌이고 있다. A4용지 30쪽 분량의 이 계좌자료는 전표와 송금영수증ㆍ거래내역 등 관련 자료가 모두 포함돼 있으며 이자까지 합하면 전체 규모는 800억원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APC 계좌 분석을 통해 연씨에게 건네진 500만달러가 자금세탁을 거쳐 노 전 대통령 측으로 흘러들어갔는지, 단순히 투자자금 명목으로 건네진 것인지 규명할 방침이다.
◇현 정권 핵심도 수사 불가피=검찰의 한 관계자는 로비의 ‘길목’이었던 추부길 전 청와대 홍보기획 비서관을 상대로 로비의 진위나 실체를 조사하면서 추 전 비서관의 청와대 출입기록도 확인하는 등 철저하게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추 전 비서관은 박 회장에게서 직접 억대의 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으며 노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씨로부터 ‘박 회장을 포함해 우리 패밀리를 건드리지 말아달라’는 요청을 받아 한나라당 친이계 A의원에게 전달한 의혹도 받고 있다. 검찰은 추 전 비서관이 직접 국세청 고위간부를 접촉했는지 혹은 건평씨의 요청을 정치권에 전달하는 ‘다리’ 역할을 했는지를 집중적으로 확인하고 있으며 건평씨의 요청을 따로 검찰 등에 전하지는 않았다는 A의원의 해명에 대해서도 진위를 가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