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CEO칼럼] 냉정과 열정 사이


한국의 열정은 뜨겁다. 그리고 해를 더할수록 전 세계를 달굴 만큼 뜨거워지고 있다. 삼성은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을 더욱 큰 격차로 따돌리고 있고 현대자동차는 전 세계 도로를 누빈다. 거기에다 강남스타일을 포함한 '한류' 문화 현상까지 가세해 아시아를 넘어 북미ㆍ유럽ㆍ남미까지 뻗어나가고 있다. 한국이라는 뜨거운 혈관이 세계 곳곳에 퍼지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어렸을 때 독일로 이민을 갔다. 독일과 영국에서 청소년기와 대학시절까지 보낸 뒤 우연한 기회에 독일 주재 일본 NHK 방송국에서 일을 하게 됐는데 그때까지 한국에서의 삶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취재차 한국을 방문했을 때 처음 접한 붉은악마들의 가슴 뜨거워지는 응원 모습은 필자가 한국에 돌아와 정착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그리고 그 선택은 정말 옳았다.


그동안 필자가 느낀 한국의 가장 큰 장점은 매우 열정적이라는 것이다. 한국 기업들은 새로운 기술을 학습하고 개발하는 데 전력을 다한다. 새벽까지 이어지는 야근에도 아침 정시에 출근을 하고 휴일에도 나와서 근무하는 모습은 독일이나 영국 등 유럽에서는 보기 힘들다. 또한 경영에서도 안정적이기보다는 공격적인 전략을 펼친다. 새로운 분야와 시장을 개척하는 데 두려움이 없다. 삼성의 유럽 진출과 현대자동차의 미국에서의 마케팅 전략이 그 예다. 거기에 높은 교육열을 바탕으로 한 양질의 인재까지 더해져 힘을 보태고 있다. 열정을 바탕으로 한 한국의 힘이 세계 무대에서 눈부신 성장을 이루는 원동력이 된다.

열정으로 우리기업 세계에 우뚝서


이는 필자가 몸담고 있는 의료기기 업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국내 의료기기 시장은 2006년 이후 매년 7% 이상의 높은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미래 신성장동력 산업으로 부각되고 있는 국내 의료기기 시장은 2011년 4조3,063억원으로 세계 13위를 기록했으며 2016년에는 세계 10대 시장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기대감 속에 오늘도 많은 기업과 의료진이 더욱 혁신적인 기기를 개발하기 위해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또한 뛰어난 첨단 기술력과 높은 의료기술을 갖춘 한국 의료기기 시장은 해외 기업에도 매력적인 투자 대상이다. 미국에 본사를 둔 쿡메디칼도 한국 시장의 높은 성장 가능성과 환자 치료 개선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올해부터 국내 사업을 확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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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열정만으로 충분할까. 사회를 한 개인으로 봤을 때 사회의 혈관은 기업이라고 볼 수 있다. 기업은 일자리를 창출해 사회가 잘 돌아가도록 돕는다. 혈관에 문제가 생기면 병이 나듯이 기업에 문제가 생기면 사회가 병든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그동안 뜨거운 피를 가진 젊은이처럼 열정적으로 뛰어왔다. 그런데 너무 앞만 보고 열심히 뛰다 보니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다. 바로 기업윤리다.

기업의 성장이란 물리적 성장과 함께 윤리적 성장도 이뤄져야 한다. 세계무역기구(WTO)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무역 규모는 1조675억달러, 세계 8위로 2011년보다 한 계단 더 올랐다고 한다. 반면 독일의 국제투명성기구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2년 우리나라의 국가 청렴도는 세계 45위로 2011년 43위에서 2계단이 더 떨어졌다.

이를 반영하듯 최근 제약ㆍ의료계에서는 리베이트가 화두다. 정당한 방법이 아닌 뒷돈을 주고받은 일부 회사와 의사들이 기소됐다. 정직하게 열심히 땀 흘려 일해온 사람들에게 찬물을 끼얹는 소식이다. 이에 의협에서는 자정 선언을 통해 리베이트를 근절하겠다고 선언했으며 관련 회사들도 리베이트 근절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발표했다.

기업윤리도 냉정하게 되새겨보길

필자도 업계의 자정 선언이 매우 반갑다. 당장은 손해 보는 것 같아도 윤리 경영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빛이 난다. 해외에는 100년 넘게 굳건히 자리를 자키는 기업이 많다. 이들의 공통점은 일에 대한 열정과 함께 잘못된 건 과감히 고치는 냉정함도 함께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한국 기업들은 열심히 뛰어왔다. 하지만 사회의 신뢰 없이 오래가는 기업은 없다. 건강한 사회를 위해 한번쯤 냉정하게 자신의 위치와 미래를 점검해보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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