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짐 캐리는 ‘천의 얼굴’이다. 인간의 안면 근육 운동의 끝없는 한계를 보여줬던 그는 그만의 표정 연기에 갖가지 특수 분장들이 더해져서 영화 캐릭터 묘사의 새로운 세계를 펼쳐 보인다. 28일 개봉작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의 하이라이트이자 한계는 바로 짐 캐리에서 시작해 짐 캐리로 마무리된다. 전작 ‘마스크’나 ‘에이스 벤츄라’에서 볼 수 있었던 특유의 유머는 사라진 채 휑하게 큰 두 눈만이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보들레어가의 세 남매는 의문의 화재로 졸지에 부모와 집을 잃는다. 엄청난 유산을 물려받지만 성인이 되기 전까진 한 푼도 쓸 수 없다. 아이들 앞에 나타난 멀고 먼 친척 올라프 백작(짐 캐리)이 그 첫번째 후견인. 그는 세 남매의 유산을 빼앗기 위해 갖가지 비열한 방법을 동원하고, 아이들은 아슬아슬하게 도망치며 스릴 넘치는 대결을 펼친다. 어린이를 겨냥한 판타지물로서 영화는 장르적 속성에 충실하게 임한다. 우선 놀랍도록 똑똑한 아이들과 괴상망측한 어른들이 극단적으로 대비된다. 똑똑한 발명왕인 큰 누나 바이올렛과 독서광 클라우드, 두 살짜리 막내 써니 마저도 온 세상을 관조하는 듯한 표정으로 위기에서 침착함을 잃지 않는다. 그러나 울라프 백작을 비롯한 모든 어른들은 바보스러움의 화신이다. 메릴 스트립이 연기한 조세핀 숙모가 단연 압권.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디 아워스’ 등을 통해 지성미를 자랑했던 그녀는 집이 무너질까 노심초사하는 과대망상증 환자 연기를 구사한다. 여기에 절벽 위의 집이 사정없이 무너지는 장면, 어마어마한 크기로 재연된 호수는 만만찮은 볼 거리들이다. 그러나 세트 장면와 유명 배우들에게만 기댄 탓에 영화는 스토리의 허술함이라는 치명상을 안고 있다. 그 흔한 고민이나 갈등 하나 없이 오로지 ‘나쁜 악당과 착한 아이들과의 대결’로만 끌고 간다. ‘트루먼 쇼’보다 몇 배는 퇴보한 듯한 짐 캐리는 기괴한 표정만으로 ‘얼마나 얼굴 근육을 잘 움직이는지’만 자랑하고 있다. 만화를 깎아 내리는 건 결코 아니지만, 이 정도의 극은 오후 시간 TV용 애니메이션에서도 이젠 잘 쓰지 않는다. ‘해리 포터’와 ‘반지의 제왕’가 얼마나 훌륭히 판타지 장르를 개척했는지를 거꾸로 깨닫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