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또 바뀐 대북정책(사설)

정부의 대북정책이 또 한번 선회하고 있다. 잠수함 무장공비 침투사건이후 보였던 강경입장에서 후퇴한 것이다.마닐라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앞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잠수함 사건에 대한 북한의 사과와 4자 회담을 분리 추진키로 합의했다. 정부는 잠수함 침투사건이후 납득할만한 사과, 재발방지 약속없이는 대화에 응하거나 대북지원을 할 수 없다는 강경입장을 견지해왔다. 그러나 한미 정상회담이후 사과나 전제조건없이 4자회담을 추진하고 「사과」의 강도도 『수락할 수 있는 조치』의 선으로 그쳤다. 「재발방지 약속」은 아예 없어져 버렸다. 그동안에도 대북정책은 일관성이 없어 오락가락하여 혼란을 빚어왔는데 또한번 정책의 수정이 불가피하게 됐다. 물론 강경책이 남북문제를 푸는 최선책일 수 없고 궁극적으로 한반도 긴장완화와 평화정책에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또 한미 공조체제 유지를 위해 미국의 입장에 양보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적 한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장공비 침투와 같은 엄연한 무력도발과 인명피해 정도의 크기로 보아 없었던 일로 넘어갈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사과나 재발방지 약속을 받아내기 전에 물러섬으로써 국민적인 감정을 달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부에 대한 불만 불신은 말할 것도 없고 대미 감정에도 결코 바람직스럽지 않을게 분명하다. 더욱 우려되는 점은 북한 당국을 고무시키고 오판의 기회를 또 제공했다는 점이다. 북한은 변함없이 한국을 따돌리고 미국하고만 대화하고 협상하려는 전술을 펴왔다. 북한은 무장공비를 침투시키고 적반하장으로 협박을 하고서도 그들의 의도대로 한국 어깨너머로 미국과 대화에 성공했다고 확신할지 모른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의 결과는 북한에 그런 믿음을 심어준 꼴이다. 그것이 비록 착각일지라도 그들이 성공했다고 믿고 있는 한 한미 이간 전술을 되풀이 써먹을게 틀림없다. 한반도에서 「골칫덩어리가 한국정부」라고 보는 미국의 시각도 북한의 착각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줏대를 가져야 한다. 미국도 북한이 더이상 벼랑끝 술수를 쓰지 못하게 확고한 공조의지를 보여야 한다. 북한을 달래려다 한국인의 신뢰를 잃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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