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2월14일] 드레스덴

1945년 2월14일 새벽, 독일 작센주 드레스덴. 영국 공군 폭격기가 하늘을 메웠다. 랭카스터 폭격기 796대와 B17 311대를 동원한 영국과 미국은 이틀 동안 3,900여톤의 고폭탄과 소이탄을 시내에 쏟아 부었다. 2차대전의 막바지, 독일의 패배가 확실해지던 무렵에 감행된 폭격의 명분은 항전 의지를 꺾겠다는 것. ‘독일이 42개 예비사단을 편성, 동부전선에 내보낼 것’이라는 정보보고에 연합국 수뇌부는 결국 교통의 요지면서도 대공포 등 방어시설이 없는 드레스덴 폭격이 가장 경제적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실상은 딴판이었다. 독일은 새로운 병력을 모을 만한 힘이 없었다. 드레스덴에는 군사기지나 군수공장도 존재하지 않았다. 집중 폭격을 받은 곳도 철도역 주변이 아니라 민간인 거주지역이었다. 폭격으로 단독주택 2만8,410채 가운데 2만4,866채가 파괴됐다. 학교 72개와 병원 22개, 교회 18개, 금융기관 50개, 백화점 31개도 부서지거나 불탔다. 가장 심각한 피해를 입힌 것은 소이탄. 목조가옥이 밀집한 구시가지를 겨냥한 소이탄은 1,500℃의 고열을 뿜어내며 도시와 사람을 태웠다. 화상을 입은 시민들은 2월의 혹한 속에 얼어 죽었다. 민간인 사망자 추계는 3만5,000명에서 35만명에 이르기까지 분분하지만 7만5,000여명이 희생된 히로시마 피폭 때보다 많다는 게 정설이다. 무엇이 ‘정의의 편인 미국과 영국’을 학살로 이끌었을까. 런던 공습에 대한 복수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드레스덴의 비극은 새로운 복수의 씨앗이 될 수도 있다. 독일 신나치당 등 극우주의자들은 요즘 드레스덴을 들먹이며 증오의 감정을 확산시키려 애쓰고 있다. 일과성으로 끝나는 복수는 없다. 증오는 또 다른 증오와 폭력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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