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헌(52·사진) 네이버 대표는 최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의 성장세를 언급하며 국내 1위 인터넷 기업인 네이버의 미래도 장담할 수 없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구글·애플·알리바바 등 굴지의 IT기업들이 세계 산업의 판도를 바꾸고 있고 이런 가운데 한국 시장까지 진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이면에는 전세계 국가들이 인터넷 산업을 핵심 성장동력으로 키우고 있는 것이 작용하고 있다.
그는 "정작 국내 업체들은 각종 규제에 발목이 묶여 글로벌 업체들의 시장 잠식을 눈뜨고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IT산업의 발전을 가로막는 규제철폐와 외국 기업과 국내 기업 간 역차별 문제를 심도 있게 집고 넘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한 예로 구글·페이스북·알리바바 등은 금융업에 자유롭게 진출하는 등 사업을 넓히는 데 별다른 제약이 없다. 반면 국내 IT기업들은 여러 규제로 금융업 진출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여기에는 외국에는 없는 우리나라만의 규제가 한국 IT기업들을 옥죄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어 한국의 인터넷 기업들이 '5년 뒤 우리의 모습이 어떨까' 스스로 질문을 던져볼 시점이라고 말했다. 현재 글로벌 시장은 '플랫폼 전쟁'이 한창이다. 네트워크와 콘텐츠·기기 등을 연결하는 플랫폼을 선점하는 기업이 경쟁우위를 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플랫폼이란 기본적으로 덩치에 따라 생태계가 함께 커지는 형태"라며 "한국이라는 나라만을 대상으로 한 플랫폼은 이제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주장했다. 국내 업체들이 해외로 진출해 더 많은 이용자를 담아내는 플랫폼으로 변신하지 않으면 성장 가능성이 없다는 설명이다.
김 대표는 구글의 생태계를 예로 들었다. "전세계 검색과 동영상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구글은 안드로이드로 모바일 운영체제(OS) 시장까지 석권하고 있다"며 "최근에는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제조업에까지 진출하고 있어 앞으로 모바일뿐만 아니라 산업 전반에 걸쳐 무서운 장악력을 가질 것"이라고 경계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런 상황에서 인터넷 기업이 하나의 특화된 서비스만으로 최상의 결과를 낼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며 "과연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있을지 많이 두려운 상황"이라고 고백했다.
구글과 페이스북 못지않게 신흥 강자로 떠오르고 있는 중국 인터넷 기업들의 부상도 긴장되는 부분이라고 밝혔다. 그는 "알리바바·텐센트 등의 광폭 행보는 놀랍고도 위협적"이라며 "특히 인터넷 산업에서 중요한 수익모델로 떠오른 전자상거래 시장 경쟁에서는 이미 아마존·구글 등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상태"라고 말했다.
이어 중국 IT기업들이 생태계를 빨아들이는 흡수력은 우리가 이겨내기 어려울 정도라고 강조했다. 같은 동양 문화를 공유하고 지리적으로 가까워 최근 중국 IT기업들의 한국 진출이 가속화되고 있다.
그는 "일례로 한 콘텐츠 기업을 인수하려는 도중 중국 기업이 더 큰 금액을 제시해 좌초된 경우가 있었다"며 "결국 국내에서 쓸 만한 업체들은 중국이 다 흡수해가고 있는 상황"이라고 경고했다.
문제는 이렇듯 플랫폼 패권 경쟁이 가열되는 상황에서 국내 업체들은 규제에 발목이 묶여 신기술을 적용하는 것은 물론 영역확장이 불가능한 실정이라는 점이다. 김 대표는 "국내 정보통신기술(ICT) 시장이 글로벌 기업들의 진출로 글로벌 전쟁터가 되고 있고 우리 기업도 글로벌 무대로 빠르게 진출하고 있다"며 "그런 흐름에 맞춰 한국의 ICT 규제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외국 기업과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환경조성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김 대표는 "구글이나 페이스북은 유한회사이기 때문에 매출에 대해 발표할 의무가 없다"며 "이 때문에 숫자가 공개돼 있는 국내 기업들에만 규제가 적용될 소지가 있어 시장 상황을 잘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중국의 위챗 역시 이미 자체 플랫폼에서 결제 등 금융 업무가 가능하다"며 "한국의 인터넷 기업은 이 같은 분야 진출을 시도조차 못하고 있어 더 이상 혁신적인 서비스가 나오기 어려운 환경이 됐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국내 기업들이 경쟁력을 확보하고 혁신적인 방법들을 시도할 수 있도록 규제 일변도의 접근이 아닌 '유연하면서 창의적인 규제'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물론 개인정보와 청소년 보호 측면에서 정부의 규제정책에 대해서는 공감한다"며 "하지만 집행 과정에서 외국 기업과의 역차별이 발생할 수 있다면 규제가 똑같이 적용될 수 있을 때까지 자국 업체에도 규제를 유예해주는 유연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김 대표는 산업적 지원이나 규제개선 못지않게 국내 인터넷 기업에 대한 정부의 인식변화도 시급한 과제로 꼽았다. 인터넷 기업이 앞으로 미래 산업을 이끌어갈 핵심축으로 성장했지만 그에 걸맞은 대우와 인식이 갖춰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지난 3~4일 시진핑 중국 주석의 방한을 예로 들었다. 당시 250명의 대규모 경제사절단이 시 주석을 수행했는데 그중에서도 마윈 알리바바 회장과 리옌훙 바이두 회장이 간판스타로 등장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구 경제를 대표하는 인물들만 VIP 대접을 받으며 입장했고 그나마 인터넷 기업 중 유일하게 참석한 김 대표는 지정좌석조차 받지 못해 선착순 자리에 앉았다. 그는 "리 회장을 만났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사실 근처에 갈 수도 없는 자리에 앉아 있었다"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김 대표는 "정치권과 정부의 인터넷 기업에 대한 인식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였다"며 "중국은 인터넷 기업이 주류의 전면에 나서 있는데 한국은 빠져 있는 게 서운하기도 하고 잘못된 것 같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터넷 기업이 통신과 제조만큼 산업적으로 인정받고 있지 못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과거 한국의 성공공식은 가장 빠른 인터넷을 깔고 거기에 맞춰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며 "그러나 지금 우리보다 인터넷 발전 속도가 느리다고 평가 받던 중국에서 만든 모바일 메신저 '위챗'이 전세계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프라 속도 경쟁은 이제 끝났다는 해석이다.
앞서 언급한 시 주석 방한 사례에서도 결국 '왜 중국 IT기업 회장들이 함께 들어왔을까'에 초점을 맞춰 상황을 분석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김 대표는 이번 사례를 통해 두 가지가 증명됐다고 말했다.
"하나는 중국이 이미 인터넷 기업을 앞으로의 경제를 이끌어나갈 첨병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바쁜 회장들이 시간을 쪼개서 방문했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 시장을 접수하려는 의지가 강함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처럼 중국조차 인터넷 기업을 전면에 내세우고 IT와 기존 산업 간의 결합을 장려하는 상황에서 한국은 'IT 강국'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인터넷 기업들에 대한 평가는 후진국 수준이라는 게 김 대표의 생각이다.
그는 "미국의 통신사 '버라이즌'의 CEO 이름은 몰라도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나 에릭 슈밋 구글 회장 이름은 누구나 아는 세상"이라며 "이웃 나라 일본의 경우에도 실제 아베 신조 수장이 가장 조언을 많이 받는 그룹이 라쿠텐 회장이 만든 '신경련'이라는 단체"라고 소개했다. 이어 "이 모임에는 구 경제를 대표하는 산업은 물론 심지어 통신기업도 배제돼 있다"며 "우리나라 정부도 인터넷 기업들의 중요성을 깨닫고 지금부터라도 적극적으로 자문을 받아 혁신적인 인물과 기업·서비스가 탄생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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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은 가장 큰 미션 중 하나… 인터넷 선도기업 역할 충실할 것" 펀드 등 벤처 활성화 다각 지원 |
사진=이호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