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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제윤(사진) 금융위원장은 요즘 여느 장관들보다 열심히 뛰어다닌다. 기술금융과 관계형 금융 활성화를 위해서다. 지난 8월에는 아예 1박 2일 일정으로 판교 대구 전주 천안을 아우르는 기술금융 현장 방문에 나서기도 했다. 신 위원장의 뚝심 있는 행보는 금융계의 우려가 높던 기술금융을 정착시키는 데 큰몫을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금융계에 닥친 거대한 인사 회오리 속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세월호 참사 이후 관료 출신이 배제된 금융계 인사에 정치금융이 비정상적으로 똬리를 틀었으나 그 사이에서 신 위원장은 존재감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한 전직 금융당국자는 "이헌재 전 부총리가 노무현 정부 당시 386 실세들에게 일갈하고 나왔던 그런 패기를 요즘 당국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며 "당국이 정권의 비둘기로 전락한 느낌"이라고 전했다.
당장 우리은행장 인선만 해도 금융당국은 인선에서 철저히 배제됐다.
정부가 주인인 은행장 인선에 개입해야 될 주체는 금융당국이고 이는 욕 먹을 일도 아니다. 최종 결제 라인이 더 윗선에 있다 해도 적어도 금융당국의 추천권은 먹혀야 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우리은행 행추위는 물론 금융당국조차 들러리만 섰다. 우리은행 차기 행장으로 내정된 이광구 부행장은 은행과 당국의 최초 추천 후보군(3인:이순우 행장, 이동건 수석 부행장, 정화영 중국법인장)에조차 들지 않았던 인물이다. 인선 시스템이 통째로 흔들리고 일각에서 금융당국이 '핫바지'라는 비아냥까지 나온다.
국내 최대 증권사이며 금융위 산하 산업은행이 소유한 대우증권 사장 인선도 마찬가지다. 인선 과정 파행 속에 서강금융인회(서금회) 출신인 홍성국 리서치센터장이 낙점되는 과정을 금융당국은 먼 산 바라보듯 지켜만 봤다.
금융사 2인자인 감사 자리는 더하다. 세월호 사태 후 자산관리공사·기술보증기금·예금보험공사·수출입은행·한국거래소·대우증권·서울보증보험·우리은행·경남은행까지 감사 자리는 모조리 정치권 인사들이 꿰찼다. 이러다 보니 전문성 있는 감사를 통해 금융사 내부통제시스템을 강화하겠다는 금융당국의 공언은 공염불로 그치고 있다.
부적절한 외압을 금융당국이 걸러내지 못하면서 금융계는 질서가 잡히지 못하고 어지럽다. 금융계 고위 관계자는 "식사 자리마다 실체도 알기 힘든 실세 찾기 게임이 벌어지고, 자리만 났다 하면 썩은 동아줄을 갖고 아무나 얼굴을 들이밀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투자협회장·예금보험보험공사 사장 등의 인선이 줄줄이 기다리는 내년까지 이런 혼란은 장기화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