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수출·R&D 뒷전, 내수 밥그릇만 챙겨…우물 안 개구리 신세

[중견기업 혁신으로 승부하라] <상> 실종된 기업가 정신<br>대기업 납품에만 의존… 중기지원은 "나몰라라"<br>글로벌 시장 도전하고 동반성장에 앞장 서야

중견기업이 글로벌 시장 진출과 연구개발을 등한시한 채 대기업 납품에만 의존, 대기업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2월26일 대한상공회의소·한국중견기업연합회·한국산업기술진흥원이 공동으로 주관한 ‘2012 중견기업인 송년의 밤’ 행사에서 참석자들이 건배를 하고 있다. /서울경제DB


#연매출 수백억원대였던 A사는 정보기술(IT) 완제품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 개발에 성공했다. 국내 대기업으로부터 핵심 협력사로 인정받은 후 실적은 매년 세자리씩 성장하며 1,000억원, 2,000억원의 매출을 돌파했다. 이후 A사는 연구개발(R&D)보다는 납품 대기업과의 관계유지에 힘썼다. 신사업에 관심을 가져봤지만 번번이 투자를 망설이다 덮어버렸다. 60에 가까운 나이가 돼버린 사장은 신규 투자보다는 자식에게 안정적으로 회사를 넘겨주겠다는 생각에 상속세 감면 주장에만 열심이다.

이러한 A사의 모습은 비단 한 중견기업의 사례가 아니다. 국내 대다수 중견기업들이 우물 안에 빠진 채 현실에 안주하고 있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9일 지식경제부와 중견기업연합회에 따르면 지난 2011년 기준 1,422개 중견기업의 매출액 대비 수출 비중은 17.7%에 그쳤다. 우리나라의 수출의존도는 90%에 달하지만 중견기업 중 수출기업은 680개로 절반(48%) 수준이다. 총수출액도 2008년 648억달러까지 올라섰지만 2011년에는 603억달러에 머물렀다.

이는 중견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진검승부를 하기보다는 대기업 납품 등 내수시장에 안주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중견기업들은 수출부진뿐만 아니라 R&D에도 게으르다. 특히 매출액 대비 R&D 비율을 나타내는 R&D 집약도는 규모가 커질수록 낮아진다. 전체 R&D 집약도는 1.30%이지만 매출 3,000억~5,000억원 규모의 기업은 1.06%였다. 중소기업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인 것.

이 같은 중견기업의 한심한 성적표는 제대로 한 건의 성과를 내 기업규모를 키운 뒤에는 대기업 납품에 안주하며 내수로 먹고살고 있는 데 기인한다. 우리나라 중견기업 부문이 취약한 이유가 정부 지원제도가 불비한 게 아니라 중견기업인들의 퇴보한 '기업가정신' 탓이라는 얘기다. 김동열 현대경제연구원 기업경제팀장은 "중견기업이 (납품에 안주해) 대기업에 종속되기만 해서는 얼마나 클 수 있겠느냐"며 "글로벌 경쟁력을 키워 세계시장에 진출하는 데 힘써야 한다"고 진단했다.

중견기업이란 중소기업기본법상 중소기업 범위를 벗어난 기업으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대기업)군에 속하지 않는 회사를 말한다. 통상 3년 평균 매출이 1,500억원 이상이다. 중견기업은 성장엔진인 동시에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위한 핵심이 돼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의 성장도 많지 않지만 중견기업에서 대기업으로 나아가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기업가정신으로 무장해 과감히 도전하는 혁신을 하지 못한 탓이다.


실제로 1,422개의 중견기업 중 매출 1,000억원 미만은 전체의 절반(49.2%) 가까이를 차지한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성장여력이 거의 남아 있지 않는 중견기업의 비율이 39.7%다. 표정호 한국중견기업학회장은 "중견기업이 잘되려면 국내에 안주하지 말고 글로벌로 나아가고 R&D를 많이 해야 한다"면서 "그 단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숫자도 늘어나지 않기 때문에 정책 포커스를 생태계 발전에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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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대기업의 1차 협력사가 다수인 중견기업은 동반성장의 매개고리로 중추적 역할을 담당해야 하지만 2ㆍ3차 협력업체와의 상생에는 '나 몰라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상황이다. 이로 인해 동반성장위원회는 올해 대기업 이상으로 중견기업의 동반성장 활동을 중점 점검할 계획이다.

동반성장 등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음에도 중견기업들의 모임인 중견기업연합회는 최근 '중견기업 육성' 분위기에 편승, 중소기업 밥그릇을 나눠먹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중견기업연합회는 지난해 12월 서비스업종에 대한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추진과정에서 "중기 적합업종이 중견기업들의 성장의지를 가로막는 큰 걸림돌이 된다. 중견기업을 위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한술 더 떠 일부 중견기업들이 중소기업 전용 조달시장에 다시 참여하게 해달라는 로비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소문도 들린다. 지난해 대표적 중견기업인 퍼시스가 위장 계열사인 팀스를 만들어 중기 조달시장에 잔류하려다 철퇴를 맞았지만 여전히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양상이다.

정영태 동반성장위원회 사무총장은 "중견기업들이 동반성장에 대한 관심이나 실천의지가 가장 부족하다"며 "대기업에 받은 지원을 내리사랑으로 중소기업에 대한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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