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빚 탕감 못받고 정권마저 흔들… 자충수 된 '치프라스의 승부수'

■ 그리스·채권단 구제금융 협상 합의

채권단보다 강화된 개혁안

의회서 무난히 통과됐지만 소속 정당서 17명 반대표

지지세력 이탈로 위기 초래

"더 혹독한 긴축안 내다니…" 힘 실어준 국민들도 등돌려


지난 12일(현지시간)부터 13일까지 계속 이어진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정상회의에서 그리스 사태에 대한 합의안이 도출됐지만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의 정치생명은 오히려 위태로워졌다. 채무 탕감은커녕 채권단이 처음 제시한 긴축안보다 더 혹독한 개혁안을 내놓는 등 실속 없는 협상을 벌인데다 국민은 물론 지지세력의 불만까지 키웠기 때문이다. 게다가 채권단과 대립각을 세우는 등 불안감을 고조시켜 대외신인도 추락은 물론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 사태를 촉발하는 등 경제적으로도 큰 타격을 초래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치프라스 총리의 정치적 위기는 최근 그리스 정부가 작성한 새 개혁안에 대한 의회 표결에서 확인된다. 11일 치프라스 정부는 기존 채권단의 요구보다 강화된 연금 삭감, 세수확충 등의 내용을 담은 새로운 개혁안을 작성해 의회 표결에 부쳤다. 전체 의원 300명 가운데 250명이 찬성해 개혁안은 무난히 통과됐지만 정작 자신이 이끄는 급진좌파연합(시리자) 소속 의원 17명은 반대표를 던진 것으로 나타났다. 1월 총선에서 149석을 얻은 시리자는 13석을 얻은 독립그리스인당(ANEL)과의 연정을 통해 전체 의석의 과반이 넘는 162석을 확보했다. 하지만 이번 표결에서 반대표를 던진 17명을 제외하면 시리자 연정은 총 145명으로 전체 의석 300석 중 과반 확보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시리자 내부에서는 17명의 의원을 출당시키고 보궐선거를 치르는 방안이 제기되고 있다. 또 파나기오티스 라파자니스 에너지부 장관과 조이 콘스탄토풀루 국회의장 등이 개혁안에 반대한 것으로 드러나 서둘러 개각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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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는 새 개혁안이 압도적으로 의회를 통과해 치프라스의 정치 행보에 힘이 실리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 당내 지지세력 이탈 등 정권 붕괴 위험만 키워 앞으로 치프라스 총리는 순탄치 않은 정치 여정을 겪게 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5일 '반대(OXI)'를 외치며 치프라스 총리에게 힘을 실어준 그리스 국민들도 등을 돌리고 있다. 채권단의 긴축안이 부당하다며 반대표를 던졌는데 치프라스 총리가 9일 오히려 더 혹독한 개혁안을 제시하자 국민들은 당황해 하며 치프라스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있다. 12일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아테네시민들의 분위기가 국민투표 전과 비교해 많이 달라졌다고 보도했다. 언어장애 치료사인 마리오스 로지스는 "긴축안에 반대하는 결정을 내렸을 때 모두가 행복했지만 지금은 국민투표를 왜 했는지 모르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으로 변했다"고 말했고 실업자인 바실리스 시카는 "국민투표에서 반대라고 답했는데 이번 치프라스 개혁안은 표심에 부응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치프라스 총리가 올 초 집권 이후 줄곧 채권단을 자극하며 불안감을 증폭시켜 경제에 악영향을 끼쳤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국제신용평가사들이 앞다퉈 국가신용등급을 내리는 등 대외신용도 추락은 물론 그리스 사태에 대한 불안감을 고조시켜 뱅크런도 촉발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불붙은 뱅크런 사태로 자본통제조치가 시행되면서 가계뿐 아니라 기업도 정상적인 경영활동이 불가능해져 그리스 경제는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 결국 포퓰리즘을 이용한 그의 무모한 도박이 스스로는 물론 조국 그리스의 경제까지 파탄으로 몰고 간 셈이다.


최용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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