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업계에는 속칭 ‘킬힐의 경제학’이라는 속설이 있다. 불경기일수록 10cm이상의 ‘킬힐’이 인기를 끈다는 것. 이 속설을 입증이나 하듯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킬힐이 대유행이다.
반면 역시 불황에 처해있는 일본은 우리와 다른 모습이다. 얼마 전 기자가 방문한 일본에서목격한 것은 킬힐이 아닌 단화의 유행이었다. 일본 정부가 올 1ㆍ4분기 국내총생산이 전후 최대의 감소폭을 기록했다고 밝혔을 정도로 불황인데도 플랫이 유행하고 있는 것. 언뜻 보면 ‘킬힐의 경제학’이 적용되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일본이야말로 정확하게 ‘킬힐 경제학’이 통용되고 있다는 생각이다. 일본 정부의 발표내용을 분석해보면 일본 경기가 바닥을 쳤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3월 수출 실적도 전월 대비 증가한 데다 산업생산도 지난해 9월 이후 처음으로 반등하는 등 청신호가 포착되고 있다.
패션계의 속설을 사실로 인정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여전히 킬힐이 대세인 우리나라를 보면 불황의 그림자가 쉽사리 가실 것 같지는 않다. 실제로 우리 경제를 위협하는 요소들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그나마 우리 경제의 든든한 보호막이었던 원화가치와 유가가 최근 반등하면서 수출기업을 중심으로 가격 경쟁력 약화, 원가 상승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더욱이 예기치 않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사회 분위기가 뒤숭숭한 가운데 북한의 핵실험 강행 등은 국가 신인도에 다소나마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현실이 이러한데도 경기낙관론이 여기저기서 고개를 들고 있다. 소비심리지수가 100을 넘고 중국과 미국 등 글로벌 환경이 조금씩 안정을 되찾고 있는 게 주된 이유다. 무엇보다 낙관론에는 ‘하반기에는 나아지지 않겠어’라는 막연한 희망도 배어 있다.
하지만 상황을 직시하자. 고용상황, 설비투자 지표는 여전히 우리 경제가 위기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그의 신작 ‘불황의 경제학’에서 낙관론이야말로 재앙을 불러올 화근이라고 강조한다. 지금은 막연한 희망론이 아닌 냉철한 현실인식이 필요하다. 정부와 기업ㆍ근로자 모두 위기극복을 위한 긴장의 끈을 다시 한번 조여 매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