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한덕수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경제 수장에 오른 이후 재경부와 한국은행은 어느 때보다 좋은 금실을 유지하는 듯했다. 무엇보다 전임 이헌재 부총리 시절 갈등의 단골 메뉴였던 금리 문제에 재경부 당국자들은 애써 발언을 삼갔다. 밀월 관계가 6개월 만에 끝나는 것일까. 지난 8일 박승 한은 총재가 경기 호전을 전제로 오는 10월 금리 인상을 시사하면서 양측간 앙금의 씨앗이 다시 싹트는 조짐이다. 금리 수준은 물론, 경기관(觀)과 금리 결정권 등에서 사사건건 해묵은 감정 싸움이 재연되는 느낌이다. 박병원 재경부 차관은 12일 방송에 출연, “금리를 인상할 필요가 있는 요인들은 약화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인상에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재경부의 한 고위당국자가 금리 문제에 대해 대외 석상에서 이처럼 ‘단정적’으로 금리 인상에 반대 의사를 밝힌 것은 이달 금융통화위원회가 열린 이후 처음 있는 일로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박 차관은 부총리 취임 이후 금리 문제가 나올 때마다 “금통위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원론적인 발언만을 해왔다. 그의 발언은 박 총재의 발언 이후 불거진 양측의 대립 분위기를 그대로 반영했다. 8일 박 총재의 발언과 함께 채권 시장이 요동치자 재경부 당국자들은 한은 입장에 정면 반박하는 말들을 시간이 멀다 하고 쏟아냈다. “금통위에서 시장에 시그널을 주는 방식이 아니라 금리 인상을 단언하는 듯한 발언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시장은 물론 경기 상황을 고려한 발언인지도 의문스럽다”(이철환 국고국장)며 발언 자체를 문제 삼은 데 이어 “금통위는 다수결에 의해 콜금리를 결정한다”(임영록 금융정책국장)며 의사결정 방식까지 들먹거렸다. 연이은 발언은 즉각 한은을 자극했다. 한은은 당초 공식 리포트를 통해 영향력을 줄 수 있는 뉘앙스의 발언을 자제해줄 것을 건의하려 했으나 이주열 정책기획국장이 “금통위의 의사결정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재경부의 발언은 적절하지 않다”며 불편한 심경을 에둘러 표현하는 것으로 갈무리했다. 대립 각은 경기 인식에서도 묻어나오고 있다. 금리 조정의 잣대 중 하나인 부채 문제에 재경부는 가계 빚이 500조원에 달하는 상황에서 금리를 올리면 가계의 금리 부담이 커진다고 주장한다. 기업들도 고금리를 주면서까지 돈을 빌려와 설비 투자를 확대할 만큼 경기가 살아나지 않았다며 금리 인상을 늦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은의 입장은 다르다. 한은은 저금리로 가계와 기업의 불균형이 심화됐으며 그 결과 지난해 가계 가처분 소득 증가는 0.9%에 불과했지만 기업의 가처분 소득은 무려 40%나 늘었다고 주장했다. 저금리 기조가 개인들에게 그리 득될 것이 없다는 얘기다. 기업도 7월 설비투자지수가 증가세로 전환한데다 기계 수주도 양호하다며 경기회복에 대한 자신감을 표시했다. 일부에서는 양측이 이처럼 ‘과감하게’ 대립 각을 표시하는 것이 ‘의도적(?)’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부총리와 박 총재는 매주 정기적으로 만나오던 터. 한 부총리가 박 총재의 발언을 몰랐을 리 없을 것이란 해석이다. 한 채권 딜러는 “양측이 금리 인상 논의를 점화하는 것은 한편으로 언젠가는 이뤄질 인상에 대해 준비할 시간을 주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며 “이 경우 실제 인상 시기는 의외로 늦어질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박 총재가 금리 인상을 시사하면서도 “부동산 가격을 잡기 위해 금리 정책을 동원하는 것은 신중해야 하고, 저금리 기조도 올해까지 지속돼야 한다”고 첨언한 것은 결국 한 부총리를 배려하려는 포석 가운데 하나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