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특파원 칼럼/7월 13일] '끗발' 공화국

지난 정부 때 일이다. 모 공기업에서 사장 선임과 관련한 실무업무를 담당하고 있던 K씨는 어느날 밤 늦은 시각, 낯선 전화를 받고 선잠을 깨야 했다. 그 기업의 새 사장 선임에 응모한 C씨였다. 그는 사장 후보로 올라간 3명 중 한명으로 다른 후보에 대해 꼬치꼬치 물어왔다. 하지만 C씨는 이번에 사장 후보로 올라간 3명 중 맨 마지막, 3등으로 올라간 사람이었다. A씨가 1등으로, B씨가 2등으로 올라갔다. K씨는 그래서 C씨의 전화를 시큰둥하게 받았다. '왜 이 밤에 전화해서 귀찮게 구느냐'는 식이었다. 더욱이 C씨는 1등도 아니고 2등에 대해 물었다. K씨는 대답을 하면서도 '왜 이런 걸 묻지?'하며 내심 의아해 했다. 상층부 인사 개입 더 심해져 그러나 며칠 뒤 K씨는 사장 선임 결과를 보고 깜짝 놀랐다. 3등으로 올라갔던 C씨가 사장으로 결정된 것이다. 이후 K씨는 한동안 회사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자리도 한직으로 ?겨났다. 그날 밤 C씨의 전화를 무성의하게 받은 '죄' 때문이었다. 공무원을 거쳐 공기업에서 30여년간 일하고 있는 K씨가 이 같은 과정을 수없이 거치고 지켜보면서 깨달은 공무원이나 공기업 인사의 원칙은 명쾌하다. 아주 과학적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과학이란 '끗발'이다. 끗발이 조금이라도 센 사람이 결국 자리를 차지한다는 얘기다. 앞의 C씨의 경우도 결국 막판 끗발에서 A, B를 밀어낸 것이다. 어느 정부에서나 '끗발'은 대통령, 혹은 대통령 주변과 얼마나 가까우냐로 결정된다. 이는 정권창출과정에 어느 정도의 공이 있었느냐는 소위 '지분'과도 연결된다. 지분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같은 장관ㆍ차관 자리'에 있더라도 격이 다르다. 이명박 정부 들어 인사권을 장관들에게 이관하겠다는 발표가 있었다. 이 대통령 역시 지난해 국무회의에서 "앞으로 정무직을 제외한 각 부처의 실무 간부인사를 장관에게 맡길 생각"이라며 "임기 초반에는 청와대가 불가피하게 관여한 측면이 있었으나 이제는 장관 책임 아래 인사하도록 하겠다. 다만 장관들은 본인 인사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또 각 부처 산하 공기업 기관장ㆍ임원 인사 역시 해당부처 장관에게 완전히 위임하겠다는 발표도 있었다. 하지만 장관이나 기관장들의 반응은 달랐다. 청와대에서 인사권을 주겠다고는 했지만 받은 것이 없다는 얘기였다. 오히려 상층부의 인사개입이 더욱 심해졌다는 얘기만 메아리쳤다. 장관의 산하 기관장 인사는 물론 공기업의 자회사, 손자회사까지 인사권은 장관이나 기관장 것이 아니었다. 임원뿐 아니라 사외이사 한자리까지 장관이나 기관장이 함부로 바꿀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예상 밖의 인사가 속출했다. 기획재정부 산하 모 공공기관의 경우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인사가 사장으로 오면서 '배경이 뭐냐'는 뒷얘기가 빗발쳤다. 다른 공적 성격의 경제연구기관 역시 예상 밖의 인물이 기관장으로 오면서 역시 뒷배경에 대한 이야기가 한참 동안 이어졌다. 정권에 의한 인사는 어떻게 보면 당연한 얘기다. 정권이 바뀌면 새 대통령의 정치철학과 국가운영방향을 이해하는 인사들로 진용이 새로 짜이는 것은 당연하다. 라인 좇는 사회엔 희망도 없어 문제는 이것이 어느 정도냐 하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이와 관련해 구석구석의 자리까지 자기 사람들로 채웠다. 실력이나 전문성과는 거리가 먼 인사도 많았다. 한 야당 측 인사는 "이명박 정부가 하는 인사를 보면서 왜 김대중ㆍ노무현 정부 때 우리가 그렇게 못했을까 하는 얘기를 하고는 한다"고 말했다. 술자리에서 하는 농담조의 이야기지만 한편에서는 뼈가 있는 말이다. 만일 야당 측에서 정권을 잡는다면 거꾸로 비슷한 사태가 올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다 보니 끗발이 남아 있을 때 한자리를 차지해야 한다는 무리수도 나온다. 현직 기관장이 다른 기관장 공모에 기웃기웃하는 경우다. 대한민국 고위직이 이처럼 '끗발'만을 좆아 움직일 때 우리나라는 어디로 갈까. 실력이나 전문성, 또는 해당기관의 발전이나 임무수행 대신 힘있는 줄을 찾아 이리저리 우왕좌왕하는 모습에서 대한민국은 무슨 미래를 기대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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