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11월 23일] 미봉책에 그친 금융당국의 사후약방문

1,000조원이 넘는 국내 증시를 1조5,000억원의 자금으로, 그것도 단 10여분만에 녹다운시켰던 지난 11일의 ‘옵션 쇼크’ 사태. 이날은 외국인이 국내 증시를 마음껏 조롱한 하루로 역사에 남을 듯 하다. 외국인들이 제공하는 풍부한 유동성에만 도취돼‘세계 1위 파생상품 시장’홍보에만 급급했던 국내 증시가 그 유동성에 의해 무너지는 데는 단 10여분의 시간이면 족했다는 게 만천하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옵션 쇼크 사태가 터진 지도 벌써 10여일이 훌쩍 지났다. 실제 매매 주체가 누구냐라는 기초적인 의문부터 도대체 그 저의가 무엇이냐라는 음모론적 의문까지, 사건을 둘러싼 물음표들은 이 기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쏟아져 나왔다. 극단적으로 예외적이어서 발생 가능성이 없어 보이지만 일단 발생하면 엄청난 충격을 주는 블랙스완(Black Swan) 현상 때문이기도 했지만 ‘왜 눈 뜨고 당할 수 밖에 없는가’에 대한 울분에 기인한 것이 더 컸다. 이번 옵션 쇼크 사태는 오래 전부터 예견돼 왔다. ‘국내 증시는 외국인 의존도가 높아 이들에 의해 한순간에 증시가 휘청일 수 있다’는 상식적인 수준부터 ‘지나치게 쌓여 있는 차익 거래 잔고가 매도 유탄을 맞을 위험이 높다’는 우려까지 최근에 파생상품을 둘러싼 경고음은 무수히 많았다. 또 공모펀드에 대한 증권거래세 부과가 차익거래시장에서의 외국인 지위를 더욱 공고화해 입맛대로 국내 증시를 주무르는 수단으로 쓰일 것이란 우려도 진작부터 있었다. 그러나 이 같은 경고음은 금융당국에 의해 간단히 무시돼 왔다. ‘시장 자율성을 침해한다’ 혹은 ‘세계 1위의 자리를 내줄 수 있다’는 이유로 금융당국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방치해온 것이다. 금융감독원 등 금융당국이 22일 ‘옵션 쇼크 관련 대응방안’이라는 제목의 제도 개선안을 내놨다. 금융당국에 무수한 질문이 쏟아졌지만 이들의 대답은 대부분은 “아직 모르겠다”에 그쳤다. 10여일을 넘게 고민해 내놓았다는 보완책 역시 대부분 시장에서 언급돼 온 미봉책에 불과했다. 이 전형적인 ‘사후약방문’적 조처에 속을 쓰리는 건 눈 뜨고 코를 베인 수많은 국내 투자자들이다. 이 시장에서 20여년을 넘게 일해 온 한 운용사의 파생담당 임원은 최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너무나도 자존심이 상한다”며 술만 연신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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