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이 23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의 한국방송공사(KBS) 수신료 인상안 처리를 둘러싼 전날의 여야 합의를 사실상 파기했다. 민주당은 합의파기의 책임을 한나라당에 돌렸으나 이런 조삼모사(朝三暮四)식 입장변경으로 당 안팎에서 거센 후폭풍이 일 것으로 전망된다.
민주당은 이날 예정에 없던 최고위원ㆍ문방위원 연석회의를 열어 전날 합의한 KBS 수신료 인상안 처리를 사실상 파기했다. 이용섭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선결조건이 갖춰지지 않는 한 KBS 수신료 인상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며 "신뢰할 수 있는 조치가 선행될 때 수신료 인상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대변인은 "어제와 달리 오늘은 주위의 여건이 바뀌었다"며 "원내대표단 합의를 최고위에서 다시 정리한 거라고 보면 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오는 28일 처리한다는 애초 합의에 대해 "원내대표실에서 저지도 처리(결과 중 하나)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김진표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민주당이 내건 선결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처리를) 몸으로라도 막아야 한다"고 밝혔다. 손학규 대표도 합의사실을 몰랐다는 일부 언론보도에 대해 "손 대표는 물론 박영선 정책위의장과도 얘기했다. 독단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강변했다.
전날 합의에 대해서는 "여야 간에 충분한 협의를 거쳐 합리적으로 처리한다고 오후 늦게 발표해서 설마 했는데 (한나라당이) 어제 또다시 문방위에서 날치기 처리를 시도할 줄은 몰랐다"고 한나라당이 약속을 어겼다는 점을 먼저 공격했다. 또한 "얻어터질 것도 각오했던 것"이라며 "(합의하지 못했으면) 그날로 날치기 처리됐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김 원내대표는 "날치기 처리를 막아야 한다는 긴급한 상황 등으로 인해 극한적 방법으로 저지하지는 않겠다는 멘트가 나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최고위원회의에서 합의가 뒤집히면서 김 원내대표와 협상을 주도했던 노영민 원내 수석부대표가 비판을 피하가기는 어려워 보인다. 지난 20일 법안소위에서 인상안이 강행 처리되자 모든 상임위 일정을 보이콧하며 강경 대응한 지 며칠 지나지도 않아 덜컥 합의 처리를 선언해 오락가락한다는 것이다.
비주류 성향의 최고위원들은 당장 이날 연석회의에서 김 원내대표의 협상에 대해 거세게 비판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동영 최고위원은 "엊그제 문방위 앞 복도에서 '날치기' 처리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다 느닷없이 수신료 인상안 처리에 동의한 것은 도저히 앞뒤가 맞지 않는 자가당착"이라고 비판했다. 문방위 소속인 천정배 최고위원도 "문방위에서 잘 싸웠는데 엉뚱하게 원내지도부가 '절대 몸싸움이 없을 테니 알아서 하라'고 해버린 것"이라며 "이런 바보 같은 '2중대'가 없다"고 목청을 높였다.
민주당이 인상안 저지를 결정했지만 24일과 28일 각각 문방위 전체회의가 예정돼 있어 실제로 막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