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쟁력과 구두약/김상석 정경부(기자의 눈)

요즘이야 어떤지 모르지만 과거 군대생활을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상급부대로부터의 검열을 받아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검열을 앞두고 부대원들은 칫솔과 군화정비용 구두약을 하나씩 들고 수송부 앞으로 집합한다. 칫솔로 구두약을 듬뿍 묻혀 차량의 바퀴를 까맣게 닦는 것이다. 수송차량의 바퀴들은 당연히 흙이 묻어 있어야 마땅하지만 검열을 받을 때에는 마치 새 바퀴를 끼운듯 깨끗하고 윤기마저 흐른다. 검열이 끝나고 나면 사병들은 구두약이 다 떨어져 비오는 날 물배인 군화를 신어야 하는 곤욕을 치른다. 최근의 「경쟁력 10% 높이기 운동」이 전개되는 과정을 보면서 과거 군대에서 경험한 이같은 난센스가 다시 기억나는 건 신기한 일이다. 상부의 단 한마디에 정책입안자들은 너나없이 허둥지둥 모든 경제주체들에 칫솔을 들고 집합하라 한다. 우리의 경쟁력이 낮은 이유가 높은 금리 때문이라는 소리가 나오면 은행들에 대해서는 대출금리를 내리라 한다. 임금상승률이 경쟁국에 비해 몇 배가 높다는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공기업체 임직원들의 임금을 동결하고 기업들에게도 근로자들의 임금을 동결시키라고 보이지 않는 압력을 가한다. 적어도 이같은 조치들은 순간순간 눈에 확 들어오는 결과를 보여준다는 면에서 검열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을지도 모른다. 금리가 낮아지고 임금이 동결되면 기업들은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일 것이다. 그러나 과연 우리 경제의 경쟁력이 낮은 이유가 높은 금리와 임금때문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좀더 과학적 검증이 필요하다는 점을 통계들이 보여주고 있다. 최근 수년간 임금상승률보다 노동생산성 상승률이 높고 금융부담이 높다고는 하나 우리기업들은 여타국들에 비해 더 높은 자본생산성을 구가하고 있다는 정부의 통계가 나왔다.기업들의 접대비 지출이나 준조세 지출이 경상연구개발비 보다도 턱없이 많다는 사실이나 정부 예산이 방만하게 쓰이고 있다는 부분에 대한 논의는 경쟁력 강화에서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문제를 보는 시각이 왜곡돼 있거나 원인규명 자체가 불성실할 경우 그로 인한 후유증은 모든 경제주체들을 물 배인 군화를 신고 고생하는 군인들로 만드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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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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