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7월4일] <1439> 7·4남북공동성명


1972년 7월4일,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초대형 뉴스를 쏟아냈다. ‘남북한이 상호 극비 방문해 의견을 조율한 결과 7개항에 합의했다. 북한도 지금 같은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하나하나가 분단 27년을 깨는 듯한 충격이었다. 골자는 자주ㆍ평화통일. 남북조절위원회를 설치하고 적십자회담의 성사를 위해 협조하며 서울~평양 직통전화를 가설한다는 내용도 담았다. 전국은 감동과 흥분에 젖었다. 통일의 희망도 피어났다. 문공부는 각 부처 공보관들에게 ‘북괴 대신 북한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김일성과 그 체제 비방을 삼가라’는 지침을 내렸다. 남북은 왜 갑작스럽게 공동성명을 발표했을까. 미국과 중공의 화해와 서독의 동방정책 등 국제적인 데탕트(화해) 분위기 속에서 서로 우발적인 무력 충돌을 꺼렸기 때문이라는 게 정설이다. 미국과 중국이 각각 남북한에 대화를 종용했다는 해석도 있지만…. 감동은 오래가지 않았다. 공동성명이 발표된 바로 그해 말 북한은 수상제 대신 주석제를 도입하고 남한은 유신체제로 들어갔다. 남북한 모두 공동성명을 독재권력 강화로 가는 디딤돌로 악용했던 셈이다. 성명 발표 당시 부럽다는 반응을 보였던 독일과 베트남은 통일된 지 오래다. 유일하게 ‘우려된다’고 반응했던 대만도 중국과의 본격적인 교류확대에 나서고 있다. 한반도만 예외다. 오히려 나빠졌다. 국회의원과 장관이 국회 비준을 거치지 않은 전 정권의 납북합의는 무효라고 장단을 맞추는 세상이다. 그렇다면 7ㆍ4공동성명부터 무효다. 이산가족 상봉도 끊기고 남북교역도 감소추세다. 개성공단도 겨우 버티고 있을 뿐이다. 7ㆍ4공동성명 37주년. 어린 가슴이 안았던 그날이 감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고향에 곧 돌아간다며 눈물 흘리던 실향민들은 통한의 한을 품고 세상을 떠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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