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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사실 노무현 정부 당시 체결된 것이라는 점에서는 민주당이 원죄를 갖고 있는 게 분명해요. 그렇다고 새누리당이 이를 기회로 '네 탓'이라고 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아요. 정치인의 거짓말과 남 탓 모두 넌더리가 나요."(31세 직장인 신영훈씨)
오는 4ㆍ11 총선의 최대 격전지로 꼽히는 서울 종로의 바닥 민심을 알아보기 위해 17일 들른 혜화동에서 만난 30대 직장인의 말이다.
종로는 이명박 정부 4년 동안 'MB의 입'으로 통했던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과 당 대변인을 지낸 조윤선 의원이 새누리당으로, 야권에서는 정세균 전 민주당 대표가 후보로 출사표를 던진 지역으로 벌써부터 총선의 열기가 느껴졌다.
서울의 중심으로 '정치 1번지'라는 별칭이 붙을 만큼 상징성이 높은 이 지역은 이 대통령을 포함해 3명의 대통령(윤보선ㆍ노무현)을 배출한 곳으로 매번 거물급 정치인들이 도전해왔고 이번에도 같은 양상이 재연되고 있다.
최근의 포퓰리즘 공약 논란에 대해서도 민심은 준엄하면서도 냉정한 입장을 보였다.
평창동에서 빌딩관리를 하는 70대의 한 경비원(부암동 거주)은 "지금 여야 가리지 않고 남발하고 있는 공약들은 과거 서유럽이나 우리나라 진보정당들이 주장하던 것들을 현재의 국내 사정도 고려하지 않은 채 베껴서 하고 있는 것"이라면서 "현실성이 없다는 점에서 믿을 수가 없다"며 의외의 답변을 했다.
매번 정치 거물들이 종로 지역구를 거쳐갔지만 그 결과 '별로 나아진 게 없다'는 게 지역의 대체적인 민심이었다.
종로구 내자동에서 거울ㆍ간판 가게를 운영하는 임동복(56ㆍ누하동 거주)씨는 "이름값 높은 인물들이 많이 나왔다는 얘기를 듣기는 했지만 정작 후보들이 누구인지 잘 모른다"며 "과거에도 유명 정치인들이 매번 나왔지만 생활은 별반 나아진 게 없었고 이번에도 마찬가지 아니겠느냐"고 전했다.
종로에서 태어나 50년 이상을 이곳에서만 지내왔다는 임씨는 현 정부에 대해서도 "현재뿐 아니라 과거 모든 정부에서도 경제가 어려웠던 것은 마찬가지"라며 "이번에는 후보들이 말하는 내용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내 형편에 도움이 될 인물을 뽑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뷰가 진행된 20여분간 임씨의 가게는 물건을 사러오는 이는커녕 주문전화 한 통 걸려오지 않았다. 그에게는 정치불신이 뿌리 깊게 박혀 있는 듯했다.
내수동에서 약국을 경영하는 이모(64씨는 "지난번 선거(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 후 빈부격차가 더 확대되고 젊은 사람들은 일자리를 더욱 구하기가 어려워진 것은 분명한 것 아니냐"며 "대북정책 실패로 북한과 교류하는 길을 다 막아버린 상황에서 통일세 운운은 말이 안 된다"고 현 정부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지난 총선ㆍ대선 때 투표하지 않은 것을 두고 "큰 죄를 지었다"는 그는 "이번에는 꼭 투표장에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중학동에 위치한 정세균 후보 측 선거사무실의 한 관계자는 "종로가 정치 1번지라고 하지만 실제 유권자들이 갈구하고 있는 부분은 이 같은 추상적인 위상보다 경제 1번지, 문화 1번지로서 구체적으로 내 삶에 도움이 되는 정책"이라며 "경제통으로서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한편 지역 곳곳에 위치한 역사적 유물들을 활용해 지역구민들의 실제 삶에 도움이 되는 방안을 만들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내자동에 위치한 조윤선 캠프 측의 한 관계자는 "과거 거물 인사들이 정치적 도약에 종로지역을 이용했다는 데 지역 유권자들의 불만이 많다"며 "늙어버린 종로를 젊게 바꿔달라는 요구가 많아 이에 맞춰 후보자의 젊은 이미지를 부각시킬 계획"이라고 전했다.
이동관 전 수석은 이 같은 '정권 심판론'에 대해 "정권의 공과와 관련해 정확한 평가를 내놓고 당당하게 승부해야 하지만 그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야당이 대안세력인지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정리, 국민을 설득하는 일"이라고 반박했다.
조윤선ㆍ이동관 후보 외에 새누리당에서는 공재덕 '이웃사랑 쌀 나눔본부' 대표, 남상해 ㈜하림각 회장, 장상태 '잃어버린 한국고대사 연구회' 부회장 등 5명이 출사표를 던져 당내 경선을 앞두고 있다. 당내에서는 정운찬 전 국무총리의 전략공천설도 나오는 상황이다. 민주당에서는 정세균 후보 외에 박태순 사회갈등연구소장, 이성호 전 신재생에너지센터 소장 등 3명이 공천을 신청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