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192> ‘설악산 예찬’

설악산 경치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장소로 유명한 한계령 휴게소의 관람대./서울경제DB

고려 충선왕 때의 유명한 문인이자 관료였던 안축(安軸)은 이런 말을 남겼다. ‘금강산은 수려하기는 하나 웅장하지 못하고, 지리산은 웅장하기는 하나 수려하지 못하다. 그러나 설악산은 수려하고도 웅장하다.’ 이른바 ‘설악산 예찬’이다. 설악산의 기준은 북쪽의 미시령에서 남쪽의 한계령으로까지 이어지는 길다란 능선이다. 이 선을 기준으로 속초시 쪽을 바라보는 쪽을 외설악(外雪嶽), 인제군 쪽을 내설악(內雪岳)이라고 부른다. 내설악 주변에는 유명한 고승들과 건축가들을 감동시켰던 천혜의 자연이 숨어 있다. 백담사, 영시암, 오서암 등의 오래된 사찰들이 있고, 예술인들이 거주하는 마을도 있다. 이런 인연으로 전직 대통령 중 한 사람도 영욕의 세월을 정리하기 위해 내설악 안에 있는 백담사에서 우거(寓居)했던 것은 아닌지 해석해 본다. 외설악은 해안이 보이는 쪽이다. 속초에서 설악산국립공원으로 올라가면 마주하게 되는 위치이기도 하다. 비룡폭포, 옥담폭포, 권금성같은 명소들이 기다리고 있다. 이런 지리적 조건을 염두에 둔 의상대사는 설악산 줄기가 보이는 영동(嶺東)의 해변에 낙산사(洛山寺)라는 사찰을 지었다. 설악산은 그 자체로 우리에게 다양한 선물을 준 셈이다. 그렇지만 이런 설악산의 경치를 감상하기 위해서는 수고가 필요하다. 등산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가쁜 숨을 내쉬고 끝까지 오른 이에게만 설악산은 이토록 벅찬 광경을 허락한다. 그 때문인지 설악산은 ‘신비로운 곳’으로 인식되어 왔다. 영산(靈山)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물론이고 유명한 산악인들이 해외의 산을 정복하기 전에 연습 개념으로 설악산을 등정하는 경우도 많았다. 천혜의 자연을 오르면서 체력을 기름은 물론이고, 기(氣)까지 받아 갔을 것이다.


그러나 설악산은 사람들과 가까워졌을 때 탈이 나곤 했다. 관광수입의 대상으로 다루어졌을 때 문제가 된 것이다. 인근의 유명한 사찰인 신흥사(新興寺)는 한때 승려들의 지분 다툼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설악산을 방문하는 관광객들 중 상당수가 이 사찰을 구경하기 때문에 엄청난 수익이 보장되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광대한 토지의 불법매각, 수익 배분 과정에서 벌어진 대한불교 조계종 내부의 갈등 등으로 인해 스님들까지 ‘각목’을 들고 상대방을 때리는 무시무시한 풍경이 ‘설악산’ 안에서 연출됐다. 가히 ‘말죽거리 잔혹사’를 연상케 할 정도의 ‘설악산 잔혹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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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강원도의 결정도 설악을 사람들과 가깝게 하기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바로 양양군 오색리의 오색약수터에서부터 끝청(해발 1480m)에 이르는 3.5km 구간에 케이블카를 설치하기로 한 것이다. 이 계획이 실행되면 2018년 2월쯤 평창동계올림픽 시즌에 맞추어 운영이 가능해진다.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 사람들뿐만 아니라 전세계 관광객들의 설악산 접근도 한결 편해질 것이다. 그러나 자문해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어마어마한 해외 관광객들을 유치해 놓고 그 공간의 보존과 품격 유지에 최선을 다한 적이 있었던가. ‘비경(秘景)’ 설악산이 또 다른 진통을 겪지 않을지 걱정을 떨칠 수 없는 이유다.

산은 그 자체로 우리에게 선물이다. 한국인의 정체성도 산 없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역사학자들의 지적이 가슴을 울린다. 설악산을 좀 더 손쉽게 가 볼 수 있게 하려는 대책의 취지를 수긍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산을 아프게 만드는 일이 생기지나 않을지 우려스럽다.


김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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