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구(平邱)에서 -정약용 지음, 송재소 옮김
최(崔)가 종, 너와 헤어진 십여 년 만에
오늘밤 찾아와 네 집에서 자는구나
너 이제 집을 이뤄 살림살이 넉넉하여
단지 그릇 물건들이 모두가 빛이 나네
밭에는 채소 심고 논엔 벼 심고
아내는 주막일 아들놈은 배를 타니
위로는 매질 없고 아래론 빚 없어
한평생 호탕하게 강변에서 사는구나
내 비록 벼슬하나 무슨 보탬 있으리요
나이 사십 오히려 번민만 더해가니
천 권 책 읽었어도 가난 면치 못하였고
고을살이 삼 년에 조그만 땅도 없네
흘겨보는 백안이 온 세상에 가득하여
젊은 몸이 초췌하여 문 항상 닫고 사네
아무리 재어보고 달아보아도
일백 번 네가 낫고 내가 못하네
때마침 가을 바람에 순로의 흥 빌어다가
욕을 씻고 분을 갚아 너하고 같이 살리
‘시인 최영미, 내가 사랑하는 시’(해냄 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