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1월19일] 제임스 와트

선박수리공의 아들이 세계사를 바꿨다. 제임스 와트(James Watt) 얘기다. 1736년 1월19일 생(生), 1819년 몰(沒).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부근 그린오크에서 태어난 와트는 기계 틈에서 자라났다. 선박재료상과 수리업을 하던 아버지의 영향이다. 런던에서 기계견습공을 마친 19세의 와트가 얻은 첫 직장이 글래스고 대학 공작실험실. 산업혁명의 불길이 여기서 솟았다. 발명과 혁신이 잇따르던 시대상황에서 와트는 증기기관에 주목한다. 대량의 목재가 들어가는 전함 건조와 면직기계 보급 확산으로 삼림자원이 고갈되자 대체연료로 떠오른 석탄 채굴과 배수용으로 증기기관이 각광받던 시절이다. 와트에게도 기회가 왔다. 대학에서 뉴커먼(Newcomen)이 개발한 증기기관의 수리를 맡긴 것. 28세 되던 해다. 시련도 많았다. 보다 뛰어난 제품을 선보였지만 영업 부진으로 파산해 스코틀랜드 칼레도니아 운하 측량기사로 일하기도 했다. 와트가 각광받기 시작한 것은 새로운 동업자 매튜 볼튼를 만난 1774년부터. 와트증기기관은 1776년부터 뉴커먼 기관을 압도하며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와트 증기기관의 최대 특성은 왕복운동에 그치던 이전의 증기기관과 달리 회전운동이 가능하다는 점. 크랭크와 콘덴서, 고강력의 실린더 덕이다. 탄광의 배수를 위한 양수용으로 국한되던 증기기관의 용도는 무한대로 뻗어났다. 면직ㆍ기계공업은 물론 교통혁명까지 일어났다. 최초 발명자가 아닌 와트가 증기기관과 산업혁명의 아버지로 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와트는 현대인의 일상에서도 살아 숨쉰다. 기계나 자동차의 힘을 표시하는 마력(馬力) 개념을 도입한 것도 와트다. 전력단위인 W(와트)도 그의 이름에서 나왔다. /권홍우ㆍ경제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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