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치권 "X파일 불똥튈까" 초긴장

■ '안기부 X파일' 파장<br>한나라당 "공작정치·차떼기 이미지 각인될까" 우려<br>우리당, 진상규명 촉구… 자금유입 가능성엔 촉각<br>테이프 추가공개땐 파문 확산 될듯

정치권에 ‘테이프’태풍이 몰려오고 있다. 태풍의 눈은 21일 저녁뉴스에서 전파를 탄 안기부(현 국가정보원)의 테이프. 문민정부 시절 안기부가 비밀도청팀인 ‘미림팀’을 운영하며 수집한 주요 인물들의 대화가 담긴 테이프의 핵심 내용은 불법 대선자금 제공. 지난 97년 대선을 불과 3개월 앞둔 시점에서 언론사 고위간부와 재벌그룹 핵심인사가 만나 당시 여당에 거액의 자금을 제공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방송되느냐 마느냐를 놓고 관심을 모았던 도청 테이프가 공개되자 정치권은 바짝 엎드린 상태다. 특히 당시 집권당이었던 한나라당이 사태 추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수천개에 달한다는 녹음 테이프의 전모가 밝혀질 경우 파장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MBC가 공개한 단 한 개의 테이프의 내용 자체도 부담스럽다.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는 불법 도청. 한나라당은 불법 도청에 대해 비난을 하면서도 당에 불똥이 튈까 신경을 곤두세우는 눈치다. 사안이 확대될 경우 ‘한나라당=공작정치를 일삼았던 정치세력’으로 인식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맹형규 정책위의장은 “국정원이 그런 짓을 해선 안 된다”며 “앞으로도 이런 비열한 정치적 음모에 관여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비판적 입장을 밝혔다. 국회 정보위원인 권철현 의원도 “군사독재 정권도 아니고 문민정부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놀랍다”면서 “이번 기회에 국정원의 국내정치 개입을 발본색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두번째는 불법 대선자금 시비에 휘말릴 수 있다는 점이다. 권 의원은 “모 재벌 뿐만 아니라 어지간히 큰 그룹은 모두 관련된 것으로 2002년 대선 때도 다 밝혀졌다”며 애써 의미를 축소한 뒤 “2002년 대선 이후 ‘차떼기’니 뭐니 해서 상당부분 드러난 것인 만큼 책임질 일이 있으면 책임지면 된다”고 말했다. 원론적인 입장을 밝히면서 당이 연관되지 않았다는 것을 강조해 조기 진화에 나선 모양새다. 그러나 테이프가 연달아 공개될 경우 한나라당이 탈피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온 ‘원조 부패당’‘차떼기 정당’이라는 이미지가 굳어질 수 있다는 게 고민이다. 더욱이 정수장학회 인수시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는 점이 밝혀지는 등 최근 악재가 겹치고 있다는 점도 한나라당의 입지를 제한하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상대적으로 느긋한 편이다. 철저한 진상 규명을 촉구하면서도 도청 테이프의 내용과 관련해서는 직접적인 언급을 삼갔다. 미리 앞서 갈 필요가 전혀 없다는 판단으로 보인다. 애써서 공격하지 않아도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를 구 여권의 공작정치와 불법 대선자금 문제를 상황 전개에 따라 최대한 이용하겠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전병헌 대변인이 “국민의 정부는 안기부를 환골탈태 시켰고, 참여정부는 국익중심의 정보기관으로 사실상 독립적 운영을 하고 있다”며 차별화를 시도하면서도 97년 대선자금 내용이 담긴 테이프에 대해서는 “공개되지 않은 내용에 언급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물론 정국을 반전시킬 수도 있는 ‘호재’에 이 같은 조심스러운 반응은 우리당도 테이프 내용에서 마냥 자유롭진 않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민주노동당과 민주당은 국회 차원의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녹음 테이프 내용을 공개해 의혹을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메이저 정당인 우리당과 한나라당에 비해 자유롭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된다. 테이프가 정국을 뒤흔들 변수로 등장할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점은 확실하다. 파장이 커질 지 여부는 테이프의 추가공개에 달렸다. 불법 대선 자금에 대한 공소 시효는 이미 지났지만 진상 조사결과에 따라 현 정세를 뒤흔들 수 있는 거대한 태풍으로 발전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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